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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6.04.07] ‘사드’를 ‘태양의 후예’가 이겼다
[2016.04.07] ‘사드’를 ‘태양의 후예’가 이겼다
한중관계연구원2021-01-22

한중 관계, <태양의 후예>로 한 숨 돌리나
허재철 원광대학교 교수

 

 

지난 주 미국 워싱턴에서는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다. 제4차 핵 안보 정상 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지면서, 이를 둘러싼 각국 사이의 신경전이 첨예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한중 정상 회담은 예정 시간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양국이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 진지하게 논의했음을 나타냈는데, 이번 한중 정상 회담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양국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경제 및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지만, 북핵 문제 및 이와 관련한 군사적 조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책임 있는 세계 대국으로서 북핵 문제와 관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면서도,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하며 특히 미국은 북한과 평화 협정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우리 언론은 정확하게 소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공식적으로 발언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각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전면적이고도 완전하게 이행해야 함을 주장한다. 중국은 각국이 정세를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언행도 삼가야 하고, 이 지역 국가의 안보 이익과 전략 균형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촉구한다. 대화와 협상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고도 정확한 방향으로, 이를 위해 중국은 건설적인 노력을 하길 원하고,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대화가 재개되도록 추동해 나갈 것이다” 

 

여기서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지역 국가의 안보 이익과 전략 균형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외교적인 언어로 부드럽고 간접적으로 표현해서 그렇지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중국은 사드(THAAD) 배치를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내용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장소에서 직접 언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함께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더욱 곤혹스러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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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KBS) <태양의 후예>. ⓒKBS

 

사드로 냉랭해진 한중 관계에 부는 <태양의 후예> 훈풍 

 

이번 한중 정상 회담에서도 드러났듯이 한중 양국 사이에는 최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보 이익만 생각하고 있다고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고, 반대로 중국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안보 이익을 무시하고 미국과 하나가 되어 사드를 배치하려 한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면 중국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사드를 둘러싸고 잘 나가던 한중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 관계가 정치 군사 문제로 인해 삐걱대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한국방송(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다. 국내에서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 대륙을 들썩이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드라마'(电视剧)를 검색하면, 드라마 유형과 방송 지역, 연령대 등 각종 요소를 종합한 드라마 순위가 나타나는데 <태양의 후예>가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태양의 후예> 저작권을 구입하여 방송하고 있는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愛奇藝)>에서는 제1화부터 제6화까지 6억 뷰(3월 15일 기준)를 달성해 중국에서 대표적인 한국 드라마로 기록되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의 명성을 조만간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중국에서 <태양의 후예>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감도가 다시 상승하고 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안보 문제로 인한 불쾌한 감정을 잠재우고 있다. 그야말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사드를 이겼다고도 할 수 있겠다.

 

중국판 <태양의 후예> 나올까?

 

드라마 한 편이 서먹해질 뻔한 한중 관계에 훈풍으로 작용하고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진지한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중 관계에 있어서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의 힘이다. 최근 외교 영역에서 공공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데, 이에 발맞춰 우리 정부 및 민간 영역에서도 공공외교 강화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중 관계에 있어서도 드라마 한편이 자칫 서먹해질 수 있었던 양국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어, 공공외교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인문 교류와 관광 활성화 등 다양한 형태의 공공 외교가 강화될 때 한중 관계는 개별 사안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태양의 후예>가 중국 당국의 사전 검열을 통과해서 방영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양의 후예>는 비록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해외에 파병된 한국의 특수부대를 소재로 하고 있어, 역시 민감한 군사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탓에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악몽으로 인해 한국군 파병을 다룬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무사히’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중국의 미풍양속과 헌법, 사회주의 가치관 등을 저해하지 않았기 때문 만일까? 물론 이런 소극적 의미에서의 ‘통과’ 사유도 있었겠지만, 군사 영역에서의 강군을 꿈꾸고 있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생각하면 또 다른 셈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유 대위(송중기 역)나 서 상사(진구 역)처럼 해외에 파병되어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해 공헌하는 꿈을 <태양의 후예>를 통해 중국 인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상이 결코 ‘오버’가 아니라는 것은 얼마 전 중국의 국방부 기자회견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국의 한 기자는 국방부 대변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최근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방영되어 많은 중국 젊은이들로부터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군대도 한국 드라마로부터 배워서 중국 군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방부 대변인은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 놓지 않았지만, 조만간 중국판 <태양의 후예>가 탄생할 것 같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