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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6.08.19] ‘보이스 피싱’에 가려진 조선족 이야기
[2016.08.19] ‘보이스 피싱’에 가려진 조선족 이야기
한중관계연구원2021-01-22

중국 동포인가 조선족인가
임상훈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많은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보이스 피싱’, ‘오원춘 사건’ 등을 연상한다. 조선족에는 정말 이런 ‘범죄자’들이 대부분인가?

 

조선족에 대한 차별은 그들에 대한 호칭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외국에 사는 한민족은 재미 교포·재일 동포와 같이 ‘나라 이름+교포·동포’라고 부르는데, 왜 우리는 중국에 사는 한민족을 가리킬 때 ‘재중 교포·동포’라는 말보다 ‘조선족(朝鮮族)’이라는 말을 더 선호할까?

 

더욱이 많은 한국인들은 ‘조선족’이라는 말로 다른 외국 동포와 조선족을 가르며, 그들을 멸시·모독한다. 광복절과 많은 관련이 있는 조선족의 유래를 자세히 안다면,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결코 멸시받아서는 안 되는 자랑스러운 후예들임을 알 수 있다.

 

조선족의 의미와 역사

 

‘조선족’의 사전적 의미는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東北三省)과 그 밖의 중국 땅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브리태니커 사전)이다. 조선족이라는 말을 보면 ‘한족(漢族)·만주족(滿洲族)·장족(莊族)’ 등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한 민족이며,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듯하다.

 

하지만, 사실 한민족이 본격적으로 중국 동북 지방에 정착하고 조선족으로 불린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구한말 기근과 나라 잃은 슬픔, 그리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滿洲國)’ 설립 시 필요한 인구 충원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조선족의 역사는 중국의 여타 민족에 비해 지극히 짧다. 이 말은 조선족이 이미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이 완전하게 형성된 이후 중국에 건너왔음을 뜻한다. 여타 국가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우리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유지·발전시켜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한화(漢化)’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정말 무서운 ‘문화의 용광로’이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온 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러한 용광로에서 동화되지 않고, 우리의 문화와 언어 등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현재도 우리의 많은 학자들이 조선족들을 통해 우리 한민족의 과거를 연구할 정도이며 이는 고마울 정도로 대단하다.

 

또한 한민족이 이주해 간 곳은 북한보다 북쪽에 있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한랭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근면하기로 소문난 ‘왕서방’조차도 쌀농사를 포기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이주한 우리 선조들은 불굴의 정신과 근면함으로 농토를 개간, 쌀농사에 성공했다. 현재 중국 최고위 간부들이 모여 사는 ‘중남해(中南海)’에 공급하는 쌀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 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만들어낸 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또한 많은 조선족의 선조들 중에는 나라 잃은 시절,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건너오신 분들이 많다.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고 있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 역시 만주 벌판에서 일제에 맞서 싸우신 분이다. 김좌진과 함께 싸우던 분들의 후예 대부분이 고국에 돌아오셨지만 제대로 대우를 못 받으시거나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신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 있는 젊은 조선족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미 주거주지인 동북을 떠나 중국 전역에 진출했다. 그렇게 절대다수인 한족들과 경쟁하는 동안 언어를 잊고 문화를 잃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점차 사라지며, 한족(漢族) 중심의 ‘중국인’으로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단일 민족한국과 조선족

 

주변에서 듣는 얘기나 인터넷의 댓글 등에서 한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 대체 왜 우리는 같은 겨레인 조선족을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래와 같은 것들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원인으로 과거의 ‘이념 대립’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는 비단 조선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족들과도 관련이 깊다. 현재 우리는 중국과 경제 문화 등 각 방면에서 활발하게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중국이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것은 1992년으로 이제 갓 20년이 되었으며, 이 이전 한국과 중국은 적대 관계였다. 그 근본적 원인은 서양 열강들에 의해 농락당한 것인데, 바로 소위 ‘냉전’ 시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립이다.

 

▲ 서울의 조선족 밀집 지역인 가리봉 오거리 인근 가리봉 종합 시장. ‘동포 타운’이라는 시장 입구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프레시안(최형락)

 

먼저 한국 전쟁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미국과 연합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하였지만, 중국이 지원군을 보내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개입을 원통하게 생각하며 중국을 원망하고 있다.

 

거기에 대한민국 건국 초기 권력자들은 ‘친일’이라는 추접한 과거를 뒤덮기 위해 지금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 기념일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며, ‘반공’을 강압적으로 주입해 ‘사회주의=공포·혼란·가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웠다. 중국의 우리 동포 조선족 역시 냉전과 ‘과거사 덮기’ 때문에 우리들의 비정상적인 ‘선입견’으로 억울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두 번째로는 우리 자신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은 과거 마치 나치의 ‘순수 아리아인 혈통’을 연상시키듯 정부 주도로 날조한 용어가 적지 않다. ‘단일 민족’은 바로 그 중에 대표 격이다.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 용어의 사용은 많이 줄었지만, 단일 민족이라는 용어가 필자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의 정신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러한 사상의 부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하다.

 

문화·언어 등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은 매우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이 점에서는 가히 단일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일 민족이라는 용어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점은 절대 이런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혈통’일 것이다. 우리 동네 사투리로는 ‘튀기’라고 하는 용어가 바로 단일 민족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혐오어’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외세에게 침략을 당했던 쓰라린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이 과정에서 재물과 사람에 대한 노략질이 있었음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일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애미·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뜻의 ‘호로(오랑캐 胡, 포로 虜) 자식’이다.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으로는 가능하지만, 혈통의 순수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글로벌 사회에서 자신만의 것을 고수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로는 다른 세계의 강국들과 경쟁할 수 없다.

 

중국 동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일원

 

조선족은 암울했던 시절, 강압에 의해 정겹던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어렵사리 살아왔으며,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을 가진 존재들이다. 중국에서도 차별 당하고, 모국에서도 괄시 받고 있다.

 

이제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식 용어보다는 재미교포, 재일동포와 같이 ‘재중동포’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게도 최소한 다른 나라의 동포들에 근접한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광복절을 뒤로 하며, ‘동포’들에게 먼저 포용적인 면을 보이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40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