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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8] ‘오방낭’ 샤먼 정치, 파국만 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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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샤머니즘 정치, 과거 중국에서는?
최근 최순실 국정 개입 파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샤머니즘 정치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샤머니즘을 검색하면 박근혜, 최순실, 청와대 굿판, 오방낭, 샤머니즘 국가 등이 주요 연관어로 뜬다. 여기에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며칠만에 자진 사퇴한 박승주 씨가 지난 5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환민족 구국 천제 재현 문화 행사’에 진행위원장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특히 주요 외신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박근혜 대통령이 샤머니즘 혹은 신비주의에 빠진 일로 분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를 샤머니즘 국가라고 설명하기도 하여 우리들의 주의를 더욱 끌고 있다. 그렇다면 샤머니즘은 무엇이고, 샤머니즘 정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샤머니즘이란?
샤머니즘의 샤먼은 시베리아의 퉁구스어로 망아(忘我) 상태 중에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종교적 능력자를 의미하는 ‘사만(saman)’에서 유래한다. 이 샤먼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교 형태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이 샤머니즘은 세계 각지에 분포하는 원초적 종교 형태로 특히 북아시아의 샤머니즘이 가장 고전적‧전형적 형태로 알려져 있다.
샤먼은 남녀 성별의 구별이 없으며, 한자로 무격(巫覡)이라고 하여 무(巫)는 여성 샤먼을, 격(覡)은 남성 샤먼을 지칭한다. 이로 인하여 샤머니즘을 무격 신앙-무속(巫俗) 신앙이라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남녀의 성에 따라 남성을 박수, 여성을 무당이라도 부른다. 물론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이 과연 샤머니즘이냐에 대해서는 다른 학설이 있기도 하나, 대체로는 샤머니즘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통념이다.
샤머니즘은 원시적 종교 형태로써 비배타(非排他)적이며 범신론(汎神論)적인 다신교(多神敎)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문화나 숭배 관념 등과 접촉했을 때, 쉽게 그러한 문화적 내용이나 신앙 대상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무속 신앙의 숭배 대상에는 유불도(儒彿道)의 내용뿐만 아니라 민간 신앙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도 하여 혹자들은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로써 풍년이나 무병장수 그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 등을 비는 민간 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샤머니즘에 주술적이고, 미신적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방낭은 무엇?
지난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 참석하여 국민의 희망 메세지가 담긴 복주머니를 개봉한 바 있다. 이 복주머니가 바로 ‘오방낭’이다. 오방낭은 오행 사상을 담은 흑, 백, 청, 홍, 황 등 방위(方位)를 표시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장식한 주머니로,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부적 등이 넣어져 있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에서 ‘오방낭’이라는 파일이 발견되면서 박 대통령 취임식 역시 최 씨가 관여한 것으로, 주술적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전부터 ‘우주’, ‘혼’, ‘기운’ 등 주술적 의미의 단어들을 자주 언급한 것이 최순실 씨가 부친인 최태민 목사의 영향을 받아 오행 사상을 담은 오방낭을 주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샤머니즘을 믿는다고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거기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거나, 그와 관련된 사람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었다면 그것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역사 속 샤머니즘 정치
역사 속에서 샤머니즘이 정치에 영향을 끼친 적이 있었는가? 샤머니즘이 집권 정치 세력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정치에 영향을 준 사례를 중국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 동남쪽 장안좌문(長安左門) 밖 옥하교(玉河橋) 동쪽에 ‘당자(堂子)’라는 건물이 있다. 이 당자가 바로 중국 청(淸) 황실이 만주족 고유 신앙인 샤머니즘의 종교 의례를 거행하던 곳으로, 정월 초하루에 황제가 제주(祭主)가 되어 제천(祭天)의식을 비롯한 여러 중요 제사를 지냈다.
주지하듯이 중국의 마지막 봉건 왕조인 청은 만주족이 건립한 왕조로써 소수의 팔기병(八旗兵)을 앞세워 전 중국을 정복하고 무려 270년 가까이 통치를 했다. 청은 1583년에 만주(滿洲)의 조그만 부락에서 누르하치(奴爾哈齊)라는 젊은 추장이 군대를 일으켜 1616년에 후금을 건립하여 요동 지방을 점령했다. 이어 그의 아들 홍타이지를 거치면서 불과 30년 만에 대청제국으로 변신, 이미 멸망한 명(明) 왕조를 대신해 중국을 통치했다. 그런데 이렇게 급속하게 발전한 퉁구스계에 속하는 만주족의 성장 배경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시베리아 퉁구스어계에서 전형적으로 존재하던 샤머니즘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일련의 정복 활동을 하면서 전쟁에 출정하기에 앞서 임시 혹은 고정된 장소에서 수시로 제천(祭天) 의식을 거행한 기록이 각종 사서에 등장하는데, 이 제천 행사가 바로 당자제사의 전신인 알묘(謁廟)이다. 알묘는 누르하치 시기에는 옥황묘(玉皇廟)에서, 홍타이지(皇太極)시기에는 성황묘(城隍廟)에서 샤머니즘식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만주 지역에서 거행되던 샤머니즘식 종교 의식은 청조가 1644년 입관(入關)하여 베이징에 통치 기반을 정하면서 심양성(瀋陽城) 밖에 있었던 당자를 그대로 옮겨와 베이징 자금성 밖에 다시 건립함으로써 더욱 의례화(儀禮化)‧전례화(典禮化)되어 황실의 중요한 제전(祭典)이 되었다.
특히 베이징의 당자제사 중 원단배천(元旦拜天)이라는 활동은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 당자에서 지내는 가장 성대한 제전으로, 황제가 직접 당자에 모셔진 여러 신위(神位) 앞에서 가장 정중한 삼궤구고(三跪九叩,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바닥에 찧는 행위)의 예를 행하는, 청 황실 제사 중 제일 중요한 ‘공적 제사’였다. 여기에는 황제와 함께 친왕(親王)이하 황실 종친과 부도통(副都統)이상의 각급 관원 그리고 외번(外藩)에서 온 왕공 및 외국의 주요 사신들까지도 참여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청 황실의 당자제사에는 종교적 의미 이외에도 정치적‧외교적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대 어느 왕조에서도 사례를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청조(淸朝)에서만 유일하게 존재하였던 당자제사는 황실의 권위를 대내외적으로 확립하기 위하여 만주족 전통의 샤머니즘식 의례를 정치적‧외교적으로 적극 활용한 ‘샤머니즘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볼 때 수 세기 전에 전제적인 봉건 왕조에서 그것도 소수의 지배 민족이 다수의 다른 민족을 통치하기 위하여 채택했던 ‘샤머니즘 정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는 상황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민심에는 역행하면서 샤머니즘적 천심만을 들먹이면 파국만이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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