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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동서양 융합 연구, ‘동아시아식 체제모델’ 구상 토대
[2019.10.16] 동서양 융합 연구, ‘동아시아식 체제모델’ 구상 토대
한중관계연구원2021-01-25

동아시아 경제발전 경로의 부상

 

▲ 중국 상하이 야경 출처 : 중앙일보

 

 

20세기 후반 이래 중국과 동아시아는 정치경제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세계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을 대체하는 세력권으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무한한 성장 활력은 서구학계에서 세계체제 분석상 ‘근대화 ― 서구모델’을 이탈해 ‘탈근대화 ― 동아시아모델’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2001년 미국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동아시아지역과 다른 지역에까지 경제회복의 주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하면서 ‘신아시아시대 ― 베이징 컨센서스’의 등장을 예견하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과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부상은 세계체제론 차원에서 그 원인 규명과 함께 성장의 궁극적 목적, 사회적 결과 등을 묻는 ‘동아시아발전경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서구학계에서 동아시아 부상의 기원과 동력을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연구노력은 미국 ‘캘리포니아학파’의 웡, 포메란츠, 프랑크, 아리기 등에 의해서 본격화되었다. 캘리포니아학파는 20세기 말 중국의 정치경제적 급성장과 그로 인한 동아시아에 대한 지역적 인식환기를 배경으로 2000년을 전후로 미국에서 형성되었다. 이들 연구자 그룹의 비교경제사적 수정주의는 중국인 학자 웡의 『중국의 전환China Transformed』(1997)이라는 선행업적에 힘입은 바 크다. 웡은 서유럽과 비견되는 명청대 중국의 변화들, 곧 근면혁명, 프로토-공업, 스미스형 성장에 주목하면서 동서양의 두 경로인 ‘동아시아의 근면혁명’과 ‘유럽의 산업혁명’의 분기 과정을 논증했다. 특히 웡은 18세기 중국의 무역과 시장이 유럽을 능가하는 발전수준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웡은 당시 중국이나 유럽의 궤도는 모두 노동강화를 통한 시장기반성장의 ‘스미스형 동력’을 공유했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학파의 사회과학 진영에서는 이러한 웡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자유시장을 이데올로기로 채용한 것은 유럽이지만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정확히 해석하자면 후기 중화제국이 더 적합하다고 간파했다. 이들은 세계경제의 ‘동아시아(중국)중심론’을 견지하면서 적어도 19세기 초까지 유라시아 양극단의 서유럽과 중국은 ‘스미스형 동력’의 동일궤도 아래서 대등한 생산력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수정주의 그룹은 16~18세기 스미스적 경제로 볼 때 동아시아는 유럽과 비등했거나 그 이상의 발전수준에 달했다고 판단했다. 캘리포니아학파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흥’을 이 지역의 근세 역사동학과의 ‘연속성’에서 찾았다. 예컨대 아리기는 “유럽이 스미스적 고도 균형의 함정을 산업혁명을 통해 탈출할 수 있었던 수수께끼는 반드시 산업혁명의 전지구적 확산이 왜 약 1세기 동안 동아시아지역의 경제적 쇠퇴와 이후 신속한 경제적 부흥을 수반했느냐는 수수께끼와 결합해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리기는 상기한 문제제기에 대한 해답을 일본학계 하야미, 스기하라 등의 근면혁명에 기초한 ‘동아시아발전경로’ 연구를 원용해 안출한다. 특히 스기하라의 동아시아경로 테제에 공명해 오늘날 동아시아의 경제부활은 서구경로인 ‘생산기적’으로서의 ‘산업혁명(자본집약적 에너지소모형)’과 동아시아경로인 ‘분배기적’으로서의 ‘근면혁명(노동집약적 에너지절약형)’이 융합한 덕분이라는 것이 그 요지이다. 스기하라는 1800년 이전 동아시아의 핵심지역과 서유럽의 핵심지역 간에 인구-토지 비율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차이에 착안해 이를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근면혁명’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간주했다. 그가 보기에 “16~18세기 동아시아지역의 높은 인구증가는 발전을 가로막는 병리현상이 아니라 인구를 부양하고 효율적인 노동훈련을 계발한 ‘동아시아의 기적’이며 이는 18세기 산업화인 ‘유럽의 기적’에 비견할 만한 경제적 성취였다”.

 

스기하라는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은 요소부존량이 상이한 조건에서 서구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동집약적 에너지절약형의 독자적인 산업화전략을 채택한 결과라고 파악했다. 그리고 이 이종교배의 발전경로를 서구경로보다 노동을 더 전면적으로 흡수하고 이용하면서 기계와 자본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것에는 덜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집약적 산업화’라고 명명했다. 스기하라는 전통을 계승한 동아시아의 혼종적 산업화가 유럽식 자본집약적 에너지소모형의 산업화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더 효율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논구한다. 더 나아가 근면혁명 전통에 기초한 동아시아의 ‘노동집약적 산업화’가 서양의 ‘자본집약적 산업화’에 대한 21세기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기하라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초래한 생태환경의 파괴, 자원고갈을 상기시키면서 자원절약적이고 노동집약적인 동아시아발전경로가 미래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현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이 서구형과 동아시아형을 융합한 혼종화의 산물이라는 스기하라의 테제는 포메란츠, 아리기 등의 동아시아체제론에 그대로 유전된다. 더불어 이들의 독법은 스미스의 동아시아식 자연스러운 발전경로 이론 등과 접속하면서 노동집약적 에너지절약형 발전경로라는 ‘동아시아모델’로 정식화된다. 포메란츠는 스기하라의 관점이 동서양 대분기(Great Divergence) 전후의 상황에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성공을 연결하는 고무적인 틀임을 환기시켰다. 아리기도 스기하라의 문맥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의 부상을 서구의 근대경로와 동아시아의 전통경로가 결합된 혼합의 산물로 이해했다. 다만 스기하라와는 달리 일본보다는 ‘중국’에 무게를 두어 친환경적이고 인적 자원에 의존하는 중국식 생산방식이 동아시아의 전통경로의 현재적 활용이며, 특히 동아시아적 전통,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혼종형인 ‘중국 헤게모니’의 부활이 보다 평등하고 분배적이며 지속가능한 생태친화적 발전경로의 ‘신아시아시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근대 ‘서구식 체제모델’은 역사상 동아시아를 유럽적 역사표준의 타자로 격하시켜 서구의 지배권력을 정당화하는 단일중심체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래 동아시아권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동아시아사를 재평가하려는 동서양 학계의 움직임은 근대 서구패권의 ‘역사적 필연성’을 와해시키고 있다. 가령 프랑크가 유럽중심론을 반역사적ㆍ반과학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유럽은 자력으로 근대화를 성취한 뒤 세계 여러 지역에 시혜를 베풀었다는 사고를 진부한 추정이라고 논박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월러스틴은 이 죽어가는 ‘유럽적 보편주의’를 더 나은 체제로 바꾸려면 그 지식구조의 재구성이 요청된다고 역설한다. 이제 서구모델이 21세기 중심세계체제로서의 수명을 다한 이상, 새로운 ‘보편적 세계모델’에 대한 유의미한 모색이 절실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양 두 체제의 융합을 지향하는 수정주의 그룹의 연구는 21세기형 주체적이고 탈근대적인 ‘동아시아식 체제모델’을 구상하는 데 유익한 지식 토대가 될 것이다.

 

전홍석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