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아시아 (원대신문)
[2020.04.23] 스테레오 타입과 오타쿠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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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과연 그런가?’ 비판적 사고 중요
스테레오타입은 선입견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특정한 대상에 대해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일컫습니다. 스테레오타입은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반복적 재현’에 의해 유지되고 강화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소심한 A형’이라는 혈액형 타입론은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사람들에 의해 반복 재생산 되면서 통용되며, 사회적 통념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동아시아 3국 모두 오타쿠라는 존재의 스테레오타입을 결정지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미야자키 츠토무(宮崎勤) 사건, 한국은 ‘오덕페이트’의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 그리고 중국은 양리쥐엔娟)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지면관계상 한·일의 사례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은, 1980년대 말, 도쿄와 사이타마 일대에서 미야자키 츠토무라에 의해 저질러진 일련의 유아 납치 및 연쇄 살인사건입니다. 대상도 대상이지만 범행수법의 잔혹성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고, 미디어는 비정상성의 원인을 찾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피의자의 방을 가득 채운 6,000개에 달하는 비디오테이프였습니다. 미야자키 츠토무는 일본의 만화 동인행사에 출품하기도 했기에 오타쿠 중의 한 명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범죄의 원인을 조급하게 ‘오타쿠적인 취미’로 몰아갔으며, 한 번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는 90년대 중반까지도 이어지게 됩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오타쿠라고 한다면 심각하게 부정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이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오타쿠, 또는 ‘오덕후’의 이미지가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0년 TV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의 <가상캐릭터와 6년째 열애중 십덕후 화성인>(44화)을 통해서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17화 <가상의 미소녀와 사랑에 빠진 의대생>편을 통해서 일반적인 오타쿠에 대한 통념들(소위 ‘안경·여드름·돼지(안여돼)’와 사회적 패배자) 을 완전히 뒤집는 방송이 나간 다음이었다는 것입니다. 17화에 등장한 주인공은 의대생, 멀쩡한 외모, 여자친구 있음 등등 오타쿠의 스테레오타입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있는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인지 44화에 등장한 ‘오덕페이트’는 ‘완전체 오타쿠’로서 등장합니다. 외모는 물론, 미소녀 캐릭터가 그려진 등신대 사이즈의 ‘다키마쿠라(안는 베게)’와 헐벗은 피규어까지. 패널들과의 대화도 굉장히 작위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음’을 부각시키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방송의 반향은 엄청났고, 방송사는 시청률과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에서 오타쿠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대안 미디어의 발달로 신문·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이 축소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정보의 취사선택에 있어 개인의 비판적 사고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스테레오 타입의 재현은 예전에 알고 있던 정보를 재확인하는 방식입니다. ‘과연 그런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 비판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유튜브를 횡행하는 가짜뉴스들은 많은 경우 보고 싶은 내용을 ‘재확인’하는 방식입니다. 『맹자』에는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책이 없느니만 못하다(盡信書則不如無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보의 비판적 수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표현입니다. 합리적 의심, 그리고 주장에 있어 검증가능한 객관적 근거의 제시는 학문의 기초입니다. 의심하고, 찾아보고, 검증하십시오.
이용범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