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7.12.28] 한중관계, 삐걱댈수록 긴 호흡으로 가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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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한중,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유지원 원광대 교수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묻혀버린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2017년 정유년 12월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이슈 중 하나는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한중관계”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와 여당은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를 여러 차례 강조하였지만, 야당과 보수 언론 등에서는 중국 측의 홀대와 우리 측의 태도를 굴욕적 외교로 지적하면서 조공외교라고 날선 비판을 하였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정말 듣기 민망할 정도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헐뜯고 비판하였는데, 이런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한다고 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특히 한중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중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가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 지난 11월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 계기에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 청와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를 통하여 꼬여있는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가장 현명하고 실리적인 방법도 찾아 낼 수 있다. 변함없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 이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면, 미래를 위한 준비도 가능할 것이다.
먼저 중국의 역사에는 장기간 분열되어 치열한 경쟁이 시대를 이끌었던 춘추와 전국시대가 있었다. 특히 춘추시대에는 천하를 통치하던 주(周) 왕실이 그 권위를 상실하고, 주(周) 왕으로부터 분봉된 제후들이 거의 독립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주 왕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력이 강한 제후가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周)왕을 대신하여 국제질서를 이끌곤 하였다. 이 때 각 제후국 간의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가 바로 ‘회맹'(會盟)이라는 것이었다.
이 회맹은 춘추시대 제후국들이 국방, 전쟁 등 국가 명운을 좌우할 만한 중대 현안에 대하여 맹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국제 관계의 변화에 따라 회맹과 회맹관계를 깨뜨리는 반맹(反盟)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회맹은 참여하는 제후국들의 중간 지점 혹은 제3의 장소, 특히 주변에 막힘이 없는 공터나 초지(草地), 호숫가 등을 선정하여 길일(吉日)에 거행하였는데, 이는 다른 제후국의 매복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단 회맹이 체결되면 관련 국가들은 회맹의 효력이 지속될 동안은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공동 운명체가 되어 상호 부조하였다. 이러한 회맹을 주도했던 제후들은 중원의 패자(覇者)가 되어 회맹 국가들 간의 협력을 더욱 돈독히 하며 중원(中原)의 평화를 지키고, 천하의 안녕과 봉건 질서를 수호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천자로 여겼던 주(周) 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周) 왕이 중심이 되는 천하질서를 유지하고자, 패자가 등장하여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각 제후국 간의 관계를 이끌어 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나 진(晉)나라 문공(文公)과 같은 제후들은 주변의 크고 작은 제후국들을 모아 회맹을 주도함으로써 패자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즉 제(齊) 혹은 진(晉)이 중심이 된 중원(中原)국가가 초(楚)와 같은 변방국가와 대결하면서 주변의 여러 국가와 동맹관계를 성립시켰던 것이 바로 회맹이다. 이 회맹에 참여한 각국 간에는 일정한 규율이 존재하여 각자의 책임과 역할이 있었고,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바로 반맹(反盟)이 됐다.
물론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국제 질서를 통해 앞으로의 일을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제후국가들 사이에는 크고 작음과 강하고 약함에 차이가 있어서 그에 따른 국제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 패자(覇者)가 자신들의 부강함만 믿고 서둘러 천자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거나 혹은 자기중심적 행태를 보였다면 국제질서가 과연 유지될 수 있었을까? 당시 패자(覇者)들에게는 일정한 권한과 더불어 책임과 의무도 함께 주어졌다. 이를 잘 지킬 때 비로소 그 지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패자(覇者)도 천하의 국제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길게 보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이다.
역사 속에서는 조급함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경우가 허다하다. 조급함을 중국어로는 ‘조동'(躁動)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이 조동을 적절하게 사용하게 되면 시간과 경쟁을 하면서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의 근원이 되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균형 있게 활용하지 않고 남용(濫用)하게 되면 일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풍광(瘋狂) 상태로 이끌어 인류의 재난(災難)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근대화 이후의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 무절제한 조급증 때문에 결국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세계적 재난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신(新) 중국 성립 이후 이러한 조급함 때문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재난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동(躁動)문제를 한중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와 국가 간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의 관계와 질서는 유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동하지 말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구동존이(求同存異) 혹은 구동화이(求同化異)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공동의 협력을 추구한다면 양국의 관계 또한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이(存異)와 화이(化異)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한중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관련이 깊다. 역지사지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럴 것이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맹자 <이루편>에는 또 “다른 사람을 예로써 대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반성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자함을 반성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반성하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는 말도 나온다.
이 말도 모든 일에서 타자(他者)와 관계를 맺고 유지할 때,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라는 관계 유지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면 더욱 미래 지향적 관계 수립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제19차 당 대회에서 21세기 중반까지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특색의 세계적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대국화(大國化)를 완성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럼 대국화를 추구하는 중국이 대국에 걸 맞는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이번 한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사건들을 보면, 중국이 정말 대국으로써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자국 중심의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이 진정 대국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크게 보고 길게 생각하고 가야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중관계는 역사상으로 볼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어느 한 시점에 발생한 일들로 인하여 일희일비하면서 단견적(短見的) 안목으로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한중 양국 모두는 결코 절제 없이 조동(躁動)하지 말아야 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물론 중국도 진정 대국의 길로 나가고자 한다면 소심한 복수로 도도히 흐르는 한중관계의 물결을 흐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지원 교수는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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