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9.02.22]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노동자는 행복한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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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노동자 국가’ 선언과 현실의 괴리 정규식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선포됐다. 그런데 뒤이어 2018년 5월 중국 광둥(广东)성 선전(深圳)시에 소재한 용접설비 제조업체 자스과기공사(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 Jasic Technology)에서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처우(구타와 폭언, 휴식시간 강제 구보 등)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이어졌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수호를 위해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고자 연대 활동에 참여한 베이징대, 난징대, 런민대 등의 마르크스주의 연구모임 학생들도 협박과 구금 등 탄압을 받았다. 2019년 현재까지 구속 및 가택연금 중인 노동자와 활동가가 5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인 사회주의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음을 강조하는 중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 “나는 증씨요.”
이 사건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본질을 판가름할 중요한 분수령이기에 중국 내외에서 주목받았다. 한편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살고 있는 노동자는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밌으면서도 가슴 먹먹한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중국 CCTV 방송에서 2012년 국경절 기간에 기층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전국 각지의 서민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행복합니까?”(你幸福吗?)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농촌에서 올라온 한 품팔이 노동자(농민공)가 이러한 기자의 질문에 어이없어 하면서 “내 성은 증이요.”(我姓曾)라고 대답했다.
이 에피소드는 ‘행복’을 뜻하는 ‘幸福’과 ‘성이 복 씨’라는 ‘姓福’의 중국어 발음[xìngfú]이 같기 때문에 품팔이 노동자가 기자의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대답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노동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중국 내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의 노동자
덩샤오핑(鄧小平) 시기부터 강조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중국 공산당이 자국을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소유제 형식에서 공유제를 주체로 한다는 것, 둘째 공산당이 영도한다는 것, 셋째 함께 유복해지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덩샤오핑의 관점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반영한다고 내세우는 근거는 실제 역사적 과정에서 점차 소멸해가거나 퇴색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제로 이미 10년 전인 2009년에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소유 형태별 기업 분포를 보면 국유가 3.1%, 공유제(집단소유제)가 7%, 사유제(외자제외)가 72.5%로 국유 및 공유제 부문의 대대적인 축소와 사유 및 외자부문의 비약적인 확대가 전개됐다.
또한 2017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사유제 기업과 홍콩, 마카오, 대만을 비롯한 외자기업에 취업한 노동자가 전체 취업 노동자의 82.9%에 달하며, 국유 및 집체단위 노동자는 17.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산당의 영도’와 관련해서도 중국 공산당의 계급적 성격의 변화에 따라 사회주의적 요소가 점차 공동화되고 있다. 즉 2001년부터 사영기업가의 입당을 허용하면서 인민대표대회나 공산당의 각급 대표 기구에서 노동자·농민 출신의 대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노동자는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에 놓여있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표명하는 공산당과 노동자 사이에 심각한 단절이 발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득 격차의 극단적인 확대를 막고 최종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한다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최종 목표도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현재 각종 지표에서 드러나듯이, 오늘날 중국은 세계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등장했다.
사회적 파열의 심층에 자리한 중국 신노동자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의 가장자리에 2억 8000만 명의 농민공과 그들의 가족이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농촌 호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시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도 기본적인 권익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농민공은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시민권’을 갖춘 존재로 간주되지 않기에 이등 시민 혹은 비(非)시민으로 취급된다. 이에 따라 취업차별, 고용불안, 저임금 및 고강도의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으며, 사회보장 제도의 결핍,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 자녀들에 대한 교육 제도의 결여, 농촌에 남겨진 노인 및 아동의 양육 문제 등 농민공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농민공을 ‘신노동자’라는 개념으로 호명하는 ‘베이징 노동자의 집’ 활동가이자 사회학자 뤼투(吕途)에 의하면 이러한 현실적 상황은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기의 사회문제이다. 중국 도시의 발전은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농촌으로부터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도시발전과 경제발전의 성과를 공평하게 향유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파열이 발생하게 되었고, 신노동자 집단은 이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노동자’라는 개념에는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정치적 지위 향상에 대한 요구가 내포되어 있다. 새로운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려는 갈망이 반영되어 있다.
‘노동자 국가‘의 선언과 현실 사이를 넘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을 뒷받침하는 현실적 토대는 이미 붕괴되었거나 퇴색되었다. 따라서 이미 낡아버린 기존 ‘사회주의’라는 틀에 주박(呪缚)되어서는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할 수 없고,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불충분하게나마 중국 공산당 스스로 진행하고 있는 위로부터의 개혁과 이를 추동하는 아래로부터의 변혁 가능성을 모두 닫아버리게 된다.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稳定压倒一切)는 정책 기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권리수호(维权) 행동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순 행위로 탄압받기 일쑤다. 하지만 자끄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말한 것처럼 지배적 질서가 규정해 놓은 행동양식과 제도를 뒤흔들고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해방 과정이다. 그리고 이 해방의 근거는 ‘국가의 주인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헌법적 원칙, 그 자체에 있다.
중국 헌법 제1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 국가’로서의 선언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지난한 역사적 실천을 통해 “말해졌고, 쓰였다. 따라서 이것은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과 현실의 불일치에 ‘주제넘게’ 항거했듯이 말이다.
바로 여기가 중국 정부와 노동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할 바다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섣부른 비난이나 훈수도 아니고, 맹종이나 위안은 더더욱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에 대한 물음과 저항에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다시 역사적 성찰을 할 것인지, 함께 사상적 교류와 실천적 조우를 통해 연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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