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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9.05.10]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변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2019.05.10]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변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변화하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

심희찬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도출에 실패하고, 5월 4일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신북방정책에 커다란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비핵화 카드를 통해 미국의 체제보장과 경제 원조를 이끌어내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계획은 일단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무장해제 수준의 ‘빅딜’은 미국이 제시하는 체제보장을 완전히 신뢰하기 힘든 북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을 것이다.

 

이에 김정은은 내부의 근본적 변화를 방지하면서 체제의 보장과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오래된 대외정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동아시아와 국제정세의 향방이 다시금 시계 제로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주변 각국의 지혜로운 대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주변국 가운데 북한의 대외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특히 중국은 오랜 기간 북한의 가장 중요한 우방국 중 하나로서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공산당 창당 과정에서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을 통해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이후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직접 지원했으며,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인접 국가로서 두 나라는 ‘순망치한’, ‘혈맹관계’, ‘형제국가’ 등에 비유됐다.

 

핵 개발과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에 쏟아진 국제사회의 비난 및 제재를 막아준 것도 대부분 중국이었다. 열악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이제 한국과는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지만, 그나마도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이 없었다면 북한경제는 진즉에 붕괴했을지 모른다.

 

물론 양국의 외교가 심한 부침을 겪어온 것은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혈맹관계’는 대외적 선전을 위한 일종의 수사로 기능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냉전의 붕괴와 한중수교 등을 거치면서 점차 고립되어가던 북한이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인접 국가인 한국과 일본에 미군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제공했고, 북한 역시 중국의 지원을 통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북중관계의 변화

 

그런데 중국이 세계적 대국으로 부상한 21세기 이후, 양국의 이해관계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고, 그 해결을 위해 북한이 주장해온 북미 간 양자대화가 아니라 6자회담을 내세우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4년 톈진 사회과학원 대외경제연구소의 왕중원(王忠文)은 잡지 <전략과 관리>에 실은 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 생활이 최악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 박해를 대대적으로 저지르고” 있으며, “북중 우호를 무시하는가 하면 중미관계를 방해한다며” 북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중국은 핵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북한을 “전면적으로 지지해야 할 도의적 책임을 가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2018년 5월 7~8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찾은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1961년에 맺은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중 자동군사개입조항을 폐기하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중국이 곡물과 석유, 석탄을 북한에 제공하기 시작한 지 약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왕중원의 글이 흥미로운 것은 ‘중미관계’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이른바 중국의 국익이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내 헤게모니를 쥐어왔던 대국으로서의 자기인식을 버리고 이익 관계에 따라 주변국들을 바라보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익 관계로 따지자면 북한은 중국의 자산이나 전략적 완충지대가 아닌 일종의 부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정부는 <전략과 관리>에 대해 강제정간 조치를 취하는 등, 불쾌함을 표현한 북한 정권의 입장을 고려해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중국정부의 일방적인 지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2009년 6월 인천에서 열린 한중 미래포럼에서 중국 인민외교학회 회장 양원창(楊文昌)은 “중국과 북한은 더 이상 군사적 동맹관계가 아니다. 보통의 정상적인 외교관계”라고 주장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교수는 그의 저서 <2023년: 세계사 불변의 법칙>과 <성균차이나브리프>에 기고한 글에서 ‘한중동맹’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그 근거로 ‘일본의 군사강국화’와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역내 공통의 위협을 든다. 북한의 핵무장에 관해서 중국은 이미 김일성 시절부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적이 있지만, 여기에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발상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식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급기야 2017년에는 중국 내 권력서열 4위인 왕양(汪洋) 부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일본 공명당 대표에게 북중관계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왕 부총리는 야마구치 대표에게 북중관계가 “과거에는 피로 맺어진 관계였지만 핵문제 때문에 양측 입장이 대립하고” 있으며, “중국도 (북핵 문제의) 최대 피해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위 관료가 대북관계의 악화를 대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트럼프와의 극한 대립도 마다하지 않던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태도를 선회한 것에는 이와 같은 중국의 대북 인식변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최후의 천조>는 어디로 가는가?

 

칭화대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재직 중인 쑨저(孫哲)는 2016년 미국에서 열린 동북아 평화협력포럼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 내부의 다양한 시선을 소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고칠 수 있다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는 한편으로, 한미 양국의 ‘외과수술식 타격’과 ‘김정은 제거’를 하나의 선택지로 지지하는 언급이 중국학자와 당국자들 사이에 거론된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이 북한 지도자를 바꾸고 군대를 보내 주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쑨저의 발언은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퇴색 한지 오래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가치를 버리고 국익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자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비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을 집대성한 저작으로서 화둥사범대학교 교수 션즈화(沈志華)의 <최후의 천조(天朝)>를 들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친형제처럼 깊은 정을 나눈 관계’, ‘동고동락의 관계’로 묘사되는 북중관계의 담론들이 일종의 신화와 언어적 구속에 불과하며, 두 나라 사이에는 수많은 긴장국면과 모순이 존재했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제 중국은 그러한 폐단에서 벗어나 북한과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 발굴한 다양한 사료에 입각해 논의를 전개하는 션즈화의 책은 앞으로 북중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션즈화가 말하는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란 대체 무엇일까? 역사학자 션즈화는 20세기 이후 북중관계의 갈등과 대립양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 원인을 조공 책봉체제의 ‘천조’ 개념이 사회주의 국가 간의 국제주의 원칙으로 이어져 온 점에서 찾는다. ‘혈맹관계’는 이를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외피였다.

 

즉 그의 논리를 따르자면 전근대적 조공책봉체제 및 인터내셔널의 사상은 양국 간 관계를 현대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온 근본원인이 된다. 북중관계에서 중국의 국익과 경제적 이익을 강조하는 다른 논자들의 주장도 큰 틀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진정 ‘현대국가’에 있을까? 작금의 상황에서 중국은 주변국들과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현대국가란 보편성의 이념보다 자국의 배타적 이익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하위구조에 속박시키는 주체가 아닌가?

 

일대일로를 주창하며 소수민족과 주변국들에게 위협으로 등장하는 것이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과 북한의 국력 및 국제적 입장을 감안했을 때, 대체 양국 사이에 수립되어야 한다는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대단히 궁금하다.

 

물론 북한의 독재체제 및 핵 개발을 묵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가 그 유일한 해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공 책봉체제나 인터내셔널은 이미 과거의 시스템이고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거기에는 배타적 국민국가의 경계 및 경제적 이익과는 다른 보편성의 지향이 담겨있다. 욕조의 더러워진 물을 비워 내려다 그 안의 아기까지 흘려보내고 마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아직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입장은 아니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대북제재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원유 공급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북한에 대한 인식변화와는 별개로,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북한 카드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북한의 2018년 중국 수출은 전년도에 비해 87% 줄고 수입은 33% 감소한 상태이며, 회복의 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현대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보편성을 역내 주변국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40338#0D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