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2.05.06] 미국에서의 한복과 중국에서의 한복이 다른 이유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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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2-05-0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원광대’한중관계 브리핑’] 56개 민족을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중국의 ‘중화민족 공동체의식’ 공고화 강조한담|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연구교수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조선족 여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장면은 ‘소시민들의 국기전달’ 순서에서 55개의 소수 민족대표들이 민족의상을 입고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데서 연출됐다.
흰색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를 입고 댕기까지 곱게 땋아 내린 조선족 여성의 모습은 한복을 입은 여느 한국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중계 화면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으나, 무대 공연과 함께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조선족과 그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현장의 경기장 전광판을 통해 동시 송출됐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상모를 돌리고, 둥글게 모여 강강술래를 하고, 함께 김치를 만들어 먹는 모습은 한국의 전통문화 그대로였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한국문화를 중국문화로 오인할 소지가 충분한 장면이었고, 이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한국인들은 즉각 한국문화를 중국문화로 예속화하려는 시도, 즉 ‘문화공정’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은 한민족 혈통인 민족 정체성과 중국이라는 국적 정체성의 이중적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재중동포로 불린다. 그렇다면 한복, 김치와 같은 한반도의 전통문화는 한국의 것이며 또한 중국으로 이주해 간 조선족의 문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족의 국적이 중국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켜온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동포, 즉 조선족 외에 다른 해외 거주 동포와는 전통문화를 둘러싼 이러한 논쟁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일동포나 재미동포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고 우리 문화라면서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비난할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중국의 경우는 달리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은 동북공정, 문화공정으로 대표되는 당 국가 차원의 대응을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러한 국가적 대응은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 소수민족들에게는 ‘중화민족’으로의 국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소수민족의 민족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러한 ‘중화민족’으로의 국적 정체성은 시진핑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직후, 국정 장기 목표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 실현을 선언한 바 있다. 뒤돌아보면 중국은 중국몽 실현을 향한 주요 고비들을 잘 넘어왔다.
하지만 미국과의 패권 갈등 격화,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 양안문제와 홍콩 민주화, 소득 격차와 부의 불균형에 따른 계층갈등 심화 등 장기적인 위기들도 여전히 산적해있다. 이러한 국내외 위기 상황 속에 시진핑 정부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중국몽 실현 여부는 내부 결집, 특히 민족 대단합, 즉 56개의 민족을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단결시키는데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족’이란 개념이 공산당의 집정 합법성을 확인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2017년 제19차 당 대회부터이다. 이 대회에서 시진핑은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주조할 것(鑄牢中華民族共同體意識)”을 제기했고,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은 19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서와 당헌에 공식 기록됐다.
이후 민족사업과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에서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시주석의 발언이 반복됐다.
국족(Chinese Nation)으로서의 ‘중화민족’ 개념은 저명한 중국의 인류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이 1988년 홍콩 중문대학교가 주최한 테너 강연에서 발표한 글 <중화민족의 다원일체구조(中華民族的多元一體格局)>에서 제기됐다.
그에 따르면, 중화민족은 ‘자각한 민족 실체’이며, 각 민족들의 상위개념으로서 ‘중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국족’이다. ‘중화민족’ 개념과 (56개 민족의) 다원과 (중화민족인) 일체 간의 위계관계를 설정한 페이샤오퉁의 논지는 이후 중국 내 민족문제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강령처럼 받아들여졌고, 2017년 시진핑의 ‘중화민족 공동체의식’ 강조 이후 신시대에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주조하는 데 중요한 학술 분석 틀과 실천적 게시를 제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중화민족 공동체’란 것도 사실 페이샤오퉁의 <중화민족의 다원일체구조>의 논지를 그대로 이어받은 개념이며,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확고히 주조하자’는 정책 슬로건은 중화민족이 ‘실체’로 나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방책으로 보인다.
‘중화민족’이 중국의 정치적 전제와 법률적 보장을 갖는 ‘국민’을 의미한다면,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강화한다는 것은 곧 ‘국민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된다. 시주석은 2019년 전국 민족 단결 진보 표창대회에서 정신 공작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면서, ‘국민의식 교육’이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주조하는데 주요한 일환이자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시주석의 국민 정신공작 강화에 대한 요구는 중국에서 조선족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조선 어문교과서에도 반영되었다. 중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 중학교의 필수 조선 어문교과서는 심사통과 년도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2017~2018년 이후 2020년에 개정판이 보급됐다.
2021년 교과서는 2021년에 심사통과 되었다고 나와 있으나, 2020년 10월의 판본, 즉 2020년 개정판에 대한 2쇄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2017~2018년과 2020년 교과서만 살펴봤다. 2017~2018년 판본과 2020년 개정판 두 시기의 교과서를 비교해보면, 그 변화 속에서 교육을 통한 국민의 정신공작 강화가 어떠한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두 시기 교과서를 비교할 때 가장 큰 변화는 2020년 개정판에서는 기존에 조선(족)이라는 민족 특수성을 수식하는 ‘우리’와 ‘민족’의 의미가 각각 ‘중국’과 ‘중화민족’으로 대체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2018년 교과서 목차에서 조선어의 속담을 가르치는 단원의 제목은 <우리말 교실>에서 2020년 <조선말 교실>로 수정됐다. 또한, 동일한 문학작품 뒤에 배치된 학습활동에서도 ‘민족적인’이라는 표현만 삭제되거나, 조선족이 한국과 ‘조선’이라는 접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품도 삭제됐다.
조선족을 중국의 ‘우리’라고 범주화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2017~2018년과 달리, 개편된 2020년 교과서에서는 ‘우리’가 중국 또는 중화민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민족’의 의미는 조선족에서 중화민족이라는 국족 개념으로 변화하여 ‘조선(족)’은 해방 전후 조선과의 고리가 끊기고 중국의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로 의미화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조선족의 전통혼례, 세시풍속과 전통명절, 상례와 제례 등을 소개하는 <전통 문화 교실>도 통째로 삭제됐다.
이렇듯 2-3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중국 내에서 조선족의 정체성 배양과 직결되는 조선 어문교과서에서는 중국에 천입된 조선족 고유의 역사와 조선족 문화 특수성을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그런데 세계인의 이목이 주목되는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조선족의 전통문화라며 한복과 김치를 등장시켰다.
내부적으로는 ‘중화민족’으로의 일체화를 강화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조선족 고유의 문화를 선전한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이중적 속내까지 들여다보면 최근의 한중 문화 갈등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착잡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