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2.09.30] “가정과 국가는 하나다” 시진핑 시대의 ‘애국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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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2-09-30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장이머우의 항미원조 영화 <저격수>에 담긴 내셔널리즘한담 |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그동안 중국에서 공공연한 금기처럼 여겨졌던 항미원조 전쟁기억은 최근 격화되는 중미 갈등 속에서 다시금 ‘항미(抗美)‧국가수호(保國)’의 ‘위대한 승리’로 소환되었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지원군 정신은 ‘대미항전’ 불사의 대의 앞에 ‘애국애당’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문화산업 측면에서는 항미원조 전쟁이 주선율 주제로 격상된 가운데,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 천카이거(陳凱歌)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각각 영화 <장진호> 시리즈와 <저격수>를 통해, 전쟁 기억을 통한 ‘애국애당’의 문화정치에 한껏 힘을 보태고 있다.
두 감독은 항미원조를 모두 ‘중미전쟁’, ‘승리의 애국전쟁’으로 그려내면서도, 내셔널리즘을 고양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굴욕과 설욕의 프레임, ‘가국감정’이라는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어 흥미롭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장이머우의 영화 <저격수>와 그 속에 담긴 중국의 특수한 애국정서인 ‘가국감정(家國情緒)’에 대해 알아보겠다.
영화 <저격수>는 스나이퍼 소재의 첫 항미원조 영화로, 장이머우와 그의 딸 장모(張末)가 공동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정찰대원을 구하기 위한 인민지원군 5분대와 미군 정예 저격수 간의 전투를 그린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군의 노련한 저격수인 존은 ‘중국의 사신(死神)’으로 유명한 중국군 5분대장 류원우(劉文武)를 오랜 시간 연구해왔고, 포로로 잡힌 5분대원 량량(亮亮)을 미끼로 그와 실력을 겨눠보고자 정예팀을 꾸린다. 하얀 눈밭에서 총상을 입은 량량을 가운데 두고 5분대원들과 미군 간에 숨 막히는 저격 전투가 벌어지고, 미군은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하려는 지원군들을 한명씩 잔인하게 죽인다.
그러던 중 량량이 승패를 가를 미군 기밀을 전달하는 정찰대원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량량은 자신을 구하러 온 북한 아이의 머리카락에 기밀을 숨기고 마지막 남은 대원 다용(大永)에게 알린 후 희생된다. 다용은 스승 류원우에게 배운 저격술로 존을 처단하고, 중대장에게 군사 기밀을 무사히 전달함으로써 5분대원의 임무를 완수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장진호>시리즈와 정반대 전략을 썼다는 점이다. 초호화 캐스팅에 역대 최대 제작비, 굵직한 항미원조 전투를 소재로 전쟁 스펙터클을 강조한 <장진호>와 달리, <저격수>는 고작 8명으로 구성된 5분대의 단 한 번의 전투를 그린 작은 스케일에 별다른 특수효과도 없었으며 전부 무명의 신인 배우를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장이머우는 한 인터뷰에서 <장진호>와 촬영시기가 겹쳐 좋은 연기자를 찾기 어려웠고,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는 이미 있어 ‘소규모로 이 위대한 전쟁의 전모를 보여주는’ 색다른 방식으로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관객 호응과 평단 반응을 볼 때, 그의 전략은 확실히 적중한 듯하다. <장진호> 시리즈는 크고 화려하며 굵직한 전투를 다뤘지만, 긴 러닝타임에 많은 것들을 담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주인공 외에 평범한 다수 지원군들의 이야기는 묻혀버렸고 자연히 관객의 정서적 동원에는 힘에 부친다.
반면 <저격수>는 역사에도 남지 못한 숱한 무명의 전투에서 싸웠을 평범한 지원군들을 재현하여 관객의 내적 감화를 불러일으켰고, <장진호의 수문교>에 뒤지지 않는 관객 호응을 얻었다.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장이머우의 전략은 5분대원 모두를 같은 고향 출신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량량과 다용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 사이로 함께 참전했고 분대원들 모두 가족처럼 사이가 좋다.
또한, 영화 전체적으로 그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자막이 없으면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왜 굳이 이런 전략을 썼을까?
중국판 탈무드라고 할 수 있는 명대 아동계몽서 <증광현문>(增廣賢文)에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친형제를 떠나지 않고, 싸움터에 나가려면 부자 병사를 가르쳐야한다(打虎不離親兄弟,上陣須教父子兵)”라는 구절이 나온다. 친형제, 부자 모두 혈육관계이다.
즉,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하고 굳건하며 믿을 수 있는 관계인 혈육뿐이고, 그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면 어떤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내막을 알고 나면, 영화의 주제가가 ‘집으로'(回家)라는 것도, 그 음악을 배경으로 분대장이 “고향에서 너희를 데리고 왔는데 이제는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한 슬픈 대사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같은 고향에서 오직 내 이웃, 내 땅,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애국심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며, 가정과 국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중국의 특수한 애국정서인 ‘가국감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국감정’이란 가정과 국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감과 사랑이자, 애국주의 정신을 만들어내는 윤리적 기반으로, 가와 국의 동일화, 공동체 의식, 인애의 정을 포함한다. 즉, 국가와 가정, 사회와 개인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총체라는 것인데, 이러한 ‘가국감정’에 기반한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사회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처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 ‘가국감정’은 국가와 사회, 개인의 가치 요구를 하나로 융합하는 ‘사회주의 핵심가치관’과 상호 호응하면서 애국주의와 결합된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되었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동하는 정신적 역량’으로 부상하면서 현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체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가정과 국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둘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이해 충돌이 발생할 경우에 선택해야 하는 것은 국가라는 점이다. 즉, ‘가정은 착안점일 뿐, 근본이자 최종 목적은 국가다’.
이러한 ‘가국’의 위계는 운명공동체로서 가정과 국가의 상호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귀결된다. 이는 곧 ‘큰 집을 위해서 작은 집을 버리는 것’ 즉, ‘중화민족 대가정’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각 개인과 가정의 희생과 봉사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가국감정’은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세포로서의 국민관이자 국가존망의 위기 앞에 요구되는 자기희생적인 애국정서이며, 이것이 고대 중화민족의 유구한 전통 문화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심층적인 문화 심리적 가치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을 체현하는 중국의 주선율 영화에서는 이러한 ‘가국감정’을 불러일으켜 가와 국이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인 ‘중화민족’을 구현하는 것이 줄곧 주요한 과제였다.
주선율로 부상한 항미원조 주제의 영화 <저격수> 또한, 인민지원군의 가족 같은 관계를 빌어 ‘가국감정’을 토로하고, 국가를 위한 그들의 죽음을 온 국민이 응당 갖춰야 할 시대정신인 항미원조 정신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내적감화를 통해 그것을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중화민족’의 구성원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영화 <장진호> 시리즈 속 100년의 ‘굴욕’과 항미원조 승리의 ‘설욕’ 프레임이 주변국을 적대시하는 대항적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것처럼, <저격수>의 ‘가국정서’ 또한 국가를 위한 개인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최근 소환된 항미원조 기억은 확실히 커져가는 중미 갈등의 위기 앞에 대중을 규합하고 불안을 상상적으로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저항적 혹은 자기희생적인 내셔널리즘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미국, 한국 대중 간에 연대와 화합이 아닌 적대감을 품게 하고, 참혹했던 이 전쟁을 깊이 성찰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또한, 외부의 적에 쏠린 시선은 중국의 정치, 사회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일본의 역사학자 오노데라 시로는 중국 정부가 내셔널리즘을 통치 정당성 확보에 이용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통제를 넘어 분출하는 것에 대해 갖는 경계심을 현 공산당 정권의 딜레마로 보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항미원조를 이용한 ‘애국애당’의 문화정치는 자칫 중국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달라진 국가의 위상에 맞게, 상대방을 증오하고 승리만을 강조하는 대신, 참전한 모든 국가 병사들의 희생과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보편적 인류애와 평화의 서사로 나아가야만 한다. 중국의 ‘반전(反戰)’ 서사의 도래를 고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