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3.03.17] 중국, ‘항미원조’ 아닌 평화의 가치로 한국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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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3-03-17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한국전쟁을 동족상잔 비극으로 본 유일한 작가, 루링(路翎)한담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애국과 혁명 중 혁명만을 걷어낸 ‘항미원조’ 기억과 그 위험성
중국의 한국전쟁을 일컫는 ‘항미원조(抗美援朝)’는 2020년 시진핑 국가 최고지도자에 의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향하는 이정표”로 그 국가적 의미가 격상되었다. ‘항미원조’는 다시금 ‘항미, 국가수호’의 ‘위대한 승리’로 소환되었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지원군 정신은 ‘애국애당(愛國愛黨)’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하였다.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는 당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 통합 기능을 해온 대중문화 콘텐츠의 제작 지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중국 문화계는 바야흐로 ‘항미원조 시즌’을 맞았다. ‘항미원조’ 참전 71주년, 건당(建黨) 100주년, 신중국 건국 72주년을 위한 헌정영화 <장진호>는 중국 애국주의 영화의 역사를 다시 썼고, <장진호>의 후속편 <장진호의 수문교>, 장이머우의 영화 <저격수>가 흥행을 이어갔다.
최근 중국 정부가 정치, 문화, 사회 전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항미원조’를 소환하게 된 배경에는 패권 다툼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갈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항미원조’ 영화는 주적이었던 미군을 전면 등장시켜 대중들의 반미(反美)를 핵심으로 하는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킨다.
그러나 냉전시기와 다름없이 승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정치적 메시지를 추출하여 대중동원에 활용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의 ‘항미원조’ 서사 방식이 우려되는 가운데, 문득 작가 루링(1923-1994)이 떠오른다.
이념과 시대를 초월한 루링의 인도주의적 시선
대표적인 ‘항미원조’ 작가로 꼽히는 루링은 전쟁 중인 한반도를 방문하여 조국과 북한을 위해 투신하는 지원군의 영웅적 면모를 통해 새로운 중국의 광명과 희망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사회주의 혁명 시기 중국에서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는 수단이자 영웅을 배양해내는 투쟁의 장이었고, 죽음은 영광스러운 희생으로 미화됐다.
하지만 루링은 이러한 주류 이데올로기적 서사에서 벗어나, 전쟁을 비일상적인 극한의 특수상황으로 인식하고 죽음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인간의 비극과 그 내면세계에 주목했다. <저지대에서의 ‘전투’>, <전사의 마음> 등 그의 작품은 루링 신드롬을 일으킬만큼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서 어긋나게 되었고 문예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랜시간 고통받아야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일한 장편소설 <전쟁, 평화를 위하여>(戰爭,爲了和平)를 소개하고자 한다.
‘항미원조’, 조선인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
루링의 <전쟁, 평화를 위하여>는 1955년 전에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나 1985년 12월에 첫 출판됐고, 1950년 말부터 정전협정 체결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특이한 점은 그가 조선인 마을의 무대를 중국과 국경을 맞댄 동베이(東北) 부근이 아니라,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경계인 ’38선’ 부근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만약 38선을 시야로 가져온다면 한 민족 간 이념 갈등으로 폭발한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전쟁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항미원조’가 요구하는 ‘적과 우리’라는 대립구조가 위태로워진다. 한마디로 ‘항미원조’의 정치적 목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38선 이남과 북한 마을의 주민들이 이승만 군대의 폭정에 견디지 못해 인민군과 지원군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식으로 서술했다면, 정치적 위험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링은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두 아들을 서로 다른 진영에 둔 조선 어머니의 슬픔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38선에 가까운 마을에 사는 이 씨네는 두 아들이 모두 전쟁터에 있는데 “큰 아들은 인민군으로, 둘째 아들은 반동조직에 참가해 이승만을 따라갔다.” 어느 날, 마을 부녀위원 김정영과 최 씨 아낙은 그 집에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이 씨네 아낙을 찾아간다. 이 씨네 아낙은 그들이 둘째 아들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혈육의 정과 이념 사이에서 번뇌한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부탁한 음식을 준비했음에도 이것을 갖다 줘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찾아온 그들이 제발 눈치채지 못하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발각되고, 이 씨네 아낙은 지원군과 함께 아들이 있는 곳에 가기로 결정하고는 슬피 울다 혼절한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그녀는 지원군에게 자신이 먼저 둘째 아들을 설득해보겠다고 간곡히 부탁하고, 그 마음을 헤아린 지원군들은 주변 풀숲에 은신하여 대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숨어 있던 최 씨 아낙을 발견하게 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 아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이 씨네 아낙은 최 씨를 해하려는 아들의 총을 대신 맞고 죽게 된다.
물론 루링은 허용된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둘째 아들과 그 가족을 형상화했다. 두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부분에서 큰아들은 긍정적으로, 작은아들은 어릴 적부터 게으르고 약삭빠른 부정적 인물로 묘사하였으며, 지금은 미군의 스파이 기구에 들어가 돈을 탐하고 조선인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어머니까지 죽이는 냉혹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루링은 서사의 초점을 남한군도 지원군도 아닌 두 아들을 서로 다른 진영에 둔 어머니에게 맞춤으로써 이 전쟁이 평범한 가족을 비극으로 내몰았음을, 넓게는 한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서 서로 총을 겨누는 ‘동족상잔’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조선 인민에게 이 전쟁이 ‘적과 나’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그 적이 본래는 한 가족이었고 함께 사는 이웃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도주의적 시야가 담긴 유일한 ‘항미원조’ 문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전(反戰)’을 가치로 한 항미원조 서사로
한반도 분단과 동북아 냉전 체제를 고착화시킨 한국전쟁은 ‘중미전쟁’이 아닐뿐더러, 남한과 북한만의 전쟁도 아니었다. 남한을 포함한 유엔 진영 22개국과 북한을 포함한 공산진영 3개국이 관여한 이 전쟁은 냉전 시대 최초의 열전이었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만든 비극적인 국제전이었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은 동아시아 공공의 무대로 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각국의 상이한 기억에 갇혀 있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으로, 한국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그리고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말이다. 중국의 ‘항미원조’ 기억 또한 그 일단일 뿐이다.
세계를 뜨겁게 달군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한 ‘종전선언’은 잠시 미뤄졌다. 하지만 선언만큼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과 그 기억을 적대와 동맹에서 화해와 연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다. 주요 참전국인 중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70여 년 전과 달리, 중국은 ‘굴기’했고 미국과 어깨를 맞댄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이제는 달라진 위상에 맞게, 상대방을 증오하고 승리만을 강조하는 대신, 참전한 모든 국가 병사들의 희생과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보편적 인류애와 평화의 서사로 나아가야만 한다. 70년 전 루링이 남긴 작품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