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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3.06.23] 환구시보 분석해보니, 한중관계 악화보다 ‘자제’에 초점 맞춰
[2023.06.23] 환구시보 분석해보니, 한중관계 악화보다 ‘자제’에 초점 맞춰
한중관계연구원2023-06-23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로 읽는 한중관계

한중 관계가 전례 없이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양국 관계의 갈등은 제한적으로 존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한중관계는 늘 상호 존중과 우호 증진, 공동의 이익 추구라는 대원칙”을 기본으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정치적 논리로 한·중 관계가 경색됐지만 양국의 경제 관계는 호혜에 기반해 유지되어 왔다. 한국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문화 교류의 보복에 직면했지만, 양국 간 무역량은 적정 수준에서 유지됐다. 또한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한령이 해제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왔다.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공격적인 기조로 알려진 <환구시보>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방중을 환영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올해 초 코로나19 봉쇄 해제와 지난 2월 양국 간 단기 사증 발급 재개에 이어 중국의 당 기관지 인민망은 한국 관광지와 광주비엔날레의 중국관을 소개하며 조심스럽게 한한령을 해제하고 민간 교류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과 일본과의 ‘연대 강화’를 강조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 그리고 중국 측의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한중관계는 다시 한 번 경색됐다. 중국 친강 외교부장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불타 죽을 것(玩火者, 必自焚)”이라고 했다.

 

동시에 중국 <인민일보> 산하의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보도에 이어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betting  발언’까지 중국의 한국에 대한 발언과 논평은 한중관계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부정적 보도에 대해 항의 서한을 보냈고,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이들 보도가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내 민의를 반영(有关媒体观点不代表中国政府立场,但反映了当前中国国内的民意)”하고 있으므로 “부정적 여론을 피하기 위해, 한국의 건설적 노력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 지난 5월 24일(현지시각) <환구시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 논평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환구시보 갈무리

 

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중국 당정의 경계

 

한국 내 언론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보도하면서 ‘민의’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상정했다. 이는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한중 관계 경색의 원천을 ‘민(民)’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의 주장처럼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는 대중이 외교정책의 선택을 제약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보다 일반적으로는 국가가 여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의 매체는 선전 기관이다. 당은 여론을 관리하기 위해 선전 기관에 당의 지침을 제시하며, 당의 입장과 다른 보도는 통제와 검열 그리고 제재를 가한다. 중국 내 민족주의 정서는 당에 의해 동원되거나 통제된다. 많은 경우 당의 필요에 의해서 중국 내 기관들이 대대적으로 관심 받을 이슈를 선전하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고양해 왔다.

 

그러나 피터 그리스(Peter Hays Gries)교수가 밝혔듯이 당은 대중의 상향식 민족주의(bottom-up)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고 외교 정책의 결정과 협상에서 민족주의의 여론을 고려해야만 한다. 당은 민족주의를 촉발하나 때로는 이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로버트 로스(Robert Ross)교수가 말했듯이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당의 외교 정책은 외부로부터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환구시보>로 읽는 한중관계

 

그렇다면 주중한국대사관이 항의했던 한국의 대통령과 외교 정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제외하고 논란이 되었던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보도들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우선 중국 정부는 한중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여론을 동요시키고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중국 매체들의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보도는 중국 대중들의 시위로 이어지고 중국 당국은 때때로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문일현 정법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마찰을 빚을 때 중국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으나 이번 한중관계의 긴장 국면은 간략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비난 수위는 높지만,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한국을 위협하는 언어의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제시카 웨이스(Jessica Weiss)교수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중국인들은 조작된 신문 기사를 읽고 설문에 응답하였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명시적으로 타국에 대한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의 허풍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권위주의 환경에서도 청중 비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가자들은 대외적으로 모호한 성격의 강경한 발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언급한 ‘불장난 하는 자는 불에 타 죽는다’는 표현은 강하지만 모호하고 공허한 위협으로 중국 대중의 지지를 얻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 매체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이나 즉각 실행하지 않는 위협을 게재할 때는 중국 측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고 한국 학자들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환구시보>의 한국에 관한 보도는 한국의 정치권을 양분하고 한국 정부와 사회를 구분하고 있다.

 

전(前) <환구시보> 총편집장인 후시진(胡錫進)은 4월 26일 한국의 ‘우파 정치인’과 보수 언론을 비난하면서도, 한국인들이 주변국과의 외교나 국제관계에 관한 견해를 이들 정치인들과 공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보도 내용은 많은 한국 학자들의 의견을 전달하지만, 주로 대중국 정책에 비판적인 견해만을 인용한다. 특히 이행되지 않을 명시적 위협을 사용할 때는 중국 관변의 입장이 아닌 한국 학자들이나 언론 보도를 인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에 실린 메시지는 중국 당국이 즉각적인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중간 정치적 긴장을 교역 관계로 연계해 현 정부와 ‘우파 정치인’이 차기 선거에서 타격을 입기를 바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현재 한중간의 무역 관계가 정치적 보복이 아닌,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매체는 무역 감소의 원인에 대한 분석 대신 무역 통계의 감소만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현 정부가 다음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원색적인 비난과 강경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기사와 논평은 한중관계의 경색된 국면을 봉합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한중관계에서 유지돼 왔던 공동의 이익 추구라는 대원칙이 지속되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이를 돌파할 전략적 한 수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