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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4.04.05] 기후위기 시대, 파묘의 성공이 반가운 이유
[2024.04.05] 기후위기 시대, 파묘의 성공이 반가운 이유
한중관계연구원2024-04-08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파묘’의 오행론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
이정하 |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오컬트 영화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파묘’는 한국과 일본의 신화와 민속 문화 그리고 독립운동까지 다양한 요소를 버무려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세계관을 꼽으라면 단연 ‘오행론’일 것이다. 주인공들의 행위를 끌어내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행론도 덩달아 주목받으며, 영화 해석과 더불어 이를 설명해 주는 콘텐츠가 늘어났다. 그런데 이 오행론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오행론? 그 이전에 사방신(四方神)이 있었다.

 

오행론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원소가 순환하며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 변화하게 하고 또 소멸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 오행론의 크나큰 영향에 비해 실상 그 기원이 어디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시작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상나라 갑골문에 나타나는 동, 서, 남, 북 사방(四方) 관념이다.

 

갑골문이란 소뼈나 거북이 등껍질에 새긴 글자다. 약 3,300년 전 상나라 위정자들은 신에게 묻고자 하는 질문을 소뼈나 거북이 등껍질에 새긴 후 이를 불에 쬐어 그 갈라진 모습에서 점괘를 읽어냈다. 여기에 사용된 문자가 바로 갑골문이다.

 

사실 상나라는 갑골문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그 실재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 전설 속의 나라였다. 그러다가 청나라 말기 금석학자였던 왕의영(王懿榮)이 우연히 산 한약재 용골(龍骨)에 새겨진 문자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상나라가 실존했던 나라였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 갑골문이라는 중국 최초의 문자 기록에는 오행 관념이 없고, 동, 서, 남, 북 사방에 대한 관념만이 존재한다. 이를 발견한 것은 중국 학자 후호우쉔(胡厚宣)이었다. 그는 1930년대에 상나라 22대 군주인 무정 시대(기원전 1250~기원전 1192)의 갑골문 중에서 사방의 이름과 여기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나는 소 견갑골에, 다른 하나는 거북이 배딱지에 새겨져 있었는데, 이름에 쓰인 한자는 모두 일 년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바뀌는 모습을 묘사했다. 동방은 석(析)이라 하고, 식물이 싹을 틔운다는 뜻이다. 동방의 바람은 협(協)이며, 부드럽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남방은 인(因)이며, 식물이 자란다는 뜻이다. 그 바람은 개(愷)라 부르며, 식물이 즐거이 자란다는 뜻이다.

 

서방은 이(彝)라고 부르며, 식물을 벤다는 뜻이다. 그 바람은 위(韦)라고 하며, 역시 식물을 베어 거둔다는 뜻이다. 북방은 원(夗)이라 불리며, 식물이 땅 밑에 잠복한다는 뜻이고, 그 바람은 역(伇)이라 부르며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이 각각의 이름은 자연 만물이 봄에 태어나 여름 동안 자라 가을에 익어 겨울에 사람들이 이를 거두는 순환 관계를 보여준다. 소 견갑골에는 사방과 사방 바람의 이름만이 적혀 있지만, 거북이 배딱지에는 그 이름과 함께 비를 오게 해주십사 기원하는 점사가 적혀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농작물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서는 비가 있어야 했고,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구름이, 또 구름을 오게 하려면 바람이 필요했고, 결국에는 사방신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신에게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는 상나라 때 이미 사람들이 사계절에 대한 관념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갑골문에는 봄 춘(春)과 가을 추(秋)만 있고, 겨울 동(冬)과 여름 하(夏)는 없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나라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리듬에 따라 생물이 탄생하고 성장하여 소멸까지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방 신을 기록한 갑골문의 특징은 그 순서가 동, 서, 남, 북으로 이어지는데, 사방을 언급한 다른 갑골문에서도 이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이는 상나라 사람들이 먼저 동과 서를 인식하고, 그 이후에 남과 북을 인식했다는 의미다.

 

동서 관념이 앞선 까닭은 이곳이 해가 뜨고 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동쪽과 서쪽을 확정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남쪽과 북쪽을 파악했다. 해의 운행을 관측하여 방향을 정하고, 이를 통해 계절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역법과 월령을 제정할 수 있었다. 공간에 대한 생각이 점차 시간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장되었던 것이다.

 

▲ 영화 ‘파묘’의 한 장면. ⓒ쇼박스

 

갑골문과 호응하는 ‘산해경’의 사방신과 사방풍신

 

상나라 사람들의 사방신, 사방풍신(四方風神) 관념을 지녔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기록은 단지 갑골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나라 신화를 풍부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산해경’에도 사방신과 사방풍신의 이름이 남아 있는데, 이는 갑골문의 기록과 일치한다.

 

갑골문에서 이름만 나오는 것과 달리 <산해경>에서는 각자 맡은 임무가 있다. 해와 달이 떠오르는 곳에 사는 동쪽의 신은 이름이 절단이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은 준이다. 절단은 동쪽 끝에서 바람을 내보내고 거두어들인다. 또 북쪽에는 완이라는 사람이 있으며,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은 염이다. 완은 동북쪽 모퉁이에서 해와 달을 머물게 하여 서로 뒤섞여 뜨고 지지 않도록 하게 해 그 길고 짧음을 주관한다.

 

남쪽에 사는 신은 인인호이며, 여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호민이라고 한다. 인인호는 남쪽 끝에 있으면서 바람을 들고나게 한다. 또 석이라는 사람도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위라고 하며, 석은 서북쪽 모퉁이에 살면서 해와 달의 길고 짧음을 맡아보고 있다. 종합하자면, 동쪽의 신 절단과 남쪽의 신 인인호는 바람을 관장하고, 북쪽의 신 완과 서쪽의 신 석은 해의 길고 짧음, 곧 시간을 조절한다.

 

한편 <산해경>에는 또 다른 사방의 신이 등장한다. 동방의 신은 이름이 구망이며, 새의 몸에 사람 얼굴이며 두 마리의 용을 탄다. 서방의 신 욕수는 왼쪽 귀에 뱀을 걸고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남방의 신 축융은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북방의 신 현명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으로 두 마리의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의 푸른 뱀을 발로 밟고 있다.

 

모두 반인반수에다가 뱀이나 용을 부릴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이 네 명의 신은 훗날 목, 화, 금, 수에 배정되고, 사계절의 신이자, 사방의 신이 되며 토에 해당하는 중앙의 신 후토와 결합하며 오방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방에서 오방으로, 추연에서 동중서로

 

아쉽지만 사방에서 오방으로 확장되는 정확한 분기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런데 동, 서, 남, 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위치가 상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중앙이 있어야 사방이 존재한다.

 

후호우쉔은 갑골문에서 상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중상'(中商)으로 지칭했다는 것 역시 발견했다. 은나라 사람들에게도 중심에 대한 관념이 있었고, 자기 자신이 그 중심이었던 것이다. 다만 상나라 사람들은 중앙을 하나의 방위로서 동, 서, 남, 북과 결합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에 사계절 관념까지 더해지니, 오행론의 밑바탕이 되는 사상적 기초는 다 갖춘 셈이었다.

 

이 사계절 관념과 월령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한나라 역사서에 나온다. <한서>에서 “음양가류는 대개 희화의 관직에서 나왔으며, 천도에 따라 월일성천을 역상하여 백성들에게 알맞았을 때를 주는 게 이것이 그 장점이다”고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양가는 어떤 학파일까? 오늘날 우리는 유가, 도가처럼 학파를 나누는 데 익숙하지만, 이 같은 사고방식은 그 당시에는 없었다. 이는 전국 시대 중기 이후에야 등장하기 시작했고, 또 지금처럼 명확하게 경계가 나뉘는 것도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음양가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 뚜렷한 학파 분류가 없었고, 또 소위 음양가라 불리던 이들의 학설을 모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제나라 사람 추연(騶衍)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추연은 그전까지 항간에 떠돌던 오행 관련 학설을 모아 하늘과 땅이 나뉜 이후로 다섯 가지 덕이 세상에 나타났고, 군주가 세상을 잘 다스리면 이에 상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다섯 가지 덕은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을 뜻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황제, 우 임금, 탕 임금, 문왕 등이 잇따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것 각각 토, 목, 금, 화, 수의 기운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보통 오덕종시론(五德終始論)이라고 부르는데, 추연은 오행상극이라는 관념으로 왕조교체를 합리화했다. 그의 오행론은 그 뒤로 면면히 이어지다가 잘 알려져 있듯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에 와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된다.

 

그는 군주가 신하를 생(生)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생하는 오행상생설을 중심으로 한 오행론 관념을 제창했다. 추연의 오덕종시론은 왕조교체를 정당화하지만, 동중서는 오행을 다섯 관료로 보고, 상생상승의 원리에 따라 이들 간의 협동과 견제를 통해 군주의 정치를 도와 통치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동중서의 오행론과 추연의 오덕종시론의 시작인 사방신 관념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자연의 순환을 주재하는 사방신의 존재를 믿고 자신을 그 힘에 의탁했던 3000년 전의 상나라 사람들과 조우하게 된다.

 

사방신 관념의 핵심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계절이 순환하고, 우주가 그 리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믿음에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기후 위기론이 피부로 와닿는 현상인 오늘날 영화 <파묘>의 유례없는 성공으로 오행론이 덩달아 유행하는 것이 더없이 반가운 까닭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 다시금 회복될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