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4.07.26] 전쟁 정리하지 않는 미국, 평화 협상 중재하는 중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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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4-08-2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중국 외교, ‘전랑외교’에서 ‘평화 중재’하는 책임국가로?권의석 |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지난 21~23일(이하 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에서는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 내 최대 정파인 파타(Fatah)를 포함한 14개 팔레스타인 단체의 지도자들이 모여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3일 간 이어진 회담을 통해 14개 팔레스타인 단체는 앞으로 더 이상의 대결과 대립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정부를 미래에 수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데에 합의하고, 이를 “베이징 선언”으로 발표했다.
이번 베이징 선언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와 파타가 통치하는 서안 지구가 통일될 수 있도록 양측이 노력하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의 총선거를 시행한다는 합의안을 담고 있다. 통일 정부 재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점,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총선거가 열릴 가능성이 희박한 점 등이 합의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2007년 하마스와 파타 간의 내전 끝에 파타를 가자 지구에서 몰아내며 팔레스타인이 사실상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양측의 갈등을 종식하고, 전후 재건 과정에서 하마스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점 때문에 2007년 이후 팔레스타인 정파 간에 맺었던 그 협약보다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팔레스타인 단체 지도자 간의 회담을 중재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 역시 이번 회담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 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과 팔레스타인의 긴밀한 관계
중국과 팔레스타인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바 있다. 특히 마오쩌둥 주석이 집권하고 있던 1960년대에는 중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아시아 내 제국주의 기지”라고 비난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무기와 훈련을 제공하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역시 1965년에 중국 내에 연락소를 설치하는 등 양측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1988년 11월 독립과 정부 수립을 선포하자 중국 정부가 곧바로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중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내 불법 정착촌 건축을 비판하는 유엔 결의안 제2334호에 찬성하는가 하면 2016년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이 “중동의 평화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면서 팔레스타인에 5000만 위안(한화 약 90억 원)의 무상 원조를 제공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중국과 팔레스타인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는 등, 양국 간의 관계 강화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가자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고 아동과 여성을 포함한 4만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하자, 중국은 가자지구 내에서의 즉각적인 휴전을 주장하면서 장기적인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책으로 중국이 홍콩, 마카오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국양제’와 유사한 방식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국제사회의 중재자 역할을 노리는 중국
중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하여 팔레스타인 내 이해관계가 다른 정파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인 중재 활동에 나선 것은 위에서 언급한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최근 몇 년 간의 중국 외교 행보를 보면 국제사회의 중재자로서 부상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고 시진핑 주석이 들어서면서, 중국 정부는 국내 민족주의 흥기에 발맞춰 중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공세적인 정책을 취하는 소위 ‘전랑외교’를 이어왔다. 그러나 남중국해 갈등,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을 둘러싼 책임 공방,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의 무역 갈등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2022년 말부터는 ‘평화 중재’에 방점을 찍은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중재 외교’가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 중동 지역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굳건한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 중동 지역 아랍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이란, 이라크 등 중동 역내 주요 국가와 갈등이 지속되었던 것과 달리, 중국의 경우 미국과 같은 정치적, 역사적 갈등이 적은 데다 일대일로를 통한 중동 각국과의 경제협력을 활용하여 중동 내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특히 2016년 사우디 정부가 시아파 성직자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단절되었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관계를 2023년 3월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 외교를 통해 7년 만에 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중국의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계속 쇠퇴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도전을 분명히했다.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도전하는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
중국은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평화 협상 중재를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그 성과는 미약한 편이었다. 2023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는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휴전, 평화 회담, 핵 사용 반대, 일방적 제재 중단 등 12개 제안을 담은 평화안을 제시한 바 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입장은 침공의 책임이 있는 러시아의 즉각적인 철수와 점령지 반환을 통한 전쟁 종식을 요구하던 서방 세계의 비판을 받았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정치 협력과 우호적 관계 때문에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평화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중국 외교부는 23일부터 26일까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러시아와의 대화 및 협상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해 11월로 예정된 제2차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겠다며 러시아와 대화를 시사한 뒤 처음으로 나온 우크라이나 측의 협상 제안이어서, 중국이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상황이다.
국제사회가 중국에 새로운 중재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데에는, 올해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영향 역시 크다. 특히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기여 문제를 두고 유럽과 동아시아의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수도 있다는 설득력 있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대선 이후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에 필적할 경제력, 외교력을 바탕으로 세계 분쟁을 조정해 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역시 ‘러시아의 조력자’라는 평가를 벗고, 무역 분쟁으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역시 세계 정세의 변화와 이에 따른 중국의 부상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당선이 유력하다는 기대를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 공개된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방어하는 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이전 임기 때와 같은 주한미군의 방위 분담금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최악의 경우 대만해협, 북핵 위기가 고조되어 한국이 군사적, 경제적 압박에 놓일 수도 있다. 이미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6자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핵 문제를 중재하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중국의 외교력과 영향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한국의 국익을 위한 활용성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