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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아시아 (원대신문)

[2026.05.11] 탈아론의 그림자: 미국의 전쟁과 일본의 선택
[2026.05.11] 탈아론의 그림자: 미국의 전쟁과 일본의 선택
한중관계연구원2026-05-22

 

 

 

[2026.05.11] 탈아론의 그림자: 미국의 전쟁과 일본의 선택

 

한중관계연구원 부교수 유지아

 

  아시아라는 말은 지리적 범주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상상이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을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국가’로 분류하지만, 일본 스스로가 항상 그렇게 자신을 인식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 근대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아시아 안에 있으면서도 아시아와 구별되려는 욕망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아시아 밖의 아시아’가 되었는가.

  이 질문의 출발점은 메이지 유신(1868)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을 직접 경험하면서 서구와 동등한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급격한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헌법 제정, 징병제, 산업화는 단순한 근대화 정책이 아니라 ‘서구형 국가로 재탄생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신을 점차 서구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은 곧 아시아 내부에서 일본의 위치를 결정하게 했다. 일본은 조선을 보호하거나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중국 역시 쇠퇴한 전통 제국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일본이 아시아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아니라,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일본이 스스로를 아시아와 구별된 위치에 놓기 시작한 사상적 출발점은 메이지기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이다. 그는 일본이 서구 문명국가들과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아시아적 질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명/비문명의 구도를 통해 일본을 아시아와 구별했다. 이 논리는 단순한 문명론을 넘어, 일본이 자신을 아시아 내부의 한 국가가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서는 근대 국가로 상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일본이 완전히 ‘아시아 밖’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인해 일본은 아시아에서도 서구와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곧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이어졌다. 아시아를 벗어나려 했던 일본은 오히려 조선, 대만, 만주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아시아 내부에서 아시아를 재구성하는 중심이 되었다. 즉 ‘탈아’가 ‘아시아 지배’로 변형된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스스로를 서구와 동일 선상에 놓으면서도 아시아에 대해서는 지배자의 위치를 자처했다. 20세기 초 일본 제국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모순을 더욱 확장했다. 겉으로는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는 공동체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일본 중심의 군사적·경제적 질서를 추구했다. 이 시기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 안에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아시아 위에 서려 했다.

  이러한 일본의 위치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패배 이후 상황이 전환되었다. 일본은 군사력을 상실하고 미국 중심의 냉전 질서 속에 편입되면서, 과거의 제국주의 정체성을 해체해야 했다. 대신 전후 일본은 경제 성장에 집중하면서 ‘평화헌법’을 통해 평화 국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일본은 다시 아시아 국가로 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일 동맹이라는 구조 속에서 서구와 더욱 강하게 결합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일본의 위치 또한 근대 시기에 그러했듯 이중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에도 드러난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전투’로 정정하고 사과한 사건이 있었다. 이 발언은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외교·안보 구조, 특히 미일 관계와 중동 해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둘러싼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논란이 되었다. 우선 문제의 핵심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상 통로로 세계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통과한다. 일본은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로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이 해협이 봉쇄되거나 불안정해질 경우 일본 경제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유가 상승은 물론이고 물류비 증가, 산업 전반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본에게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외 해상 통로가 아니라 ‘경제 생명선’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 가능성은 일본에도 직접적인 위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미일 동맹 구조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이 이란과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일본은 동맹국으로서 정치적·군사적 협력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직접적인 공격 작전에는 참여할 수 없도록 헌법 제9조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후방 지원, 정보 제공, 해상 안전 확보 활동 등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본은 전쟁 참여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서 항상 민감한 위치에 있다. 특히 일본 헌법 제9조는 국가의 군사 활동을 제한하는 핵심 조항으로 전쟁 수행을 금지하고 자위대의 역할을 방어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인이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경우 이는 단순한 외교적 설명을 넘어 자위대의 활동 범위와 법적 정당성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수행하는 ‘전진기지’ 국가와 외교적 자율성을 가진 국가라는 이중적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아시아 내부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려는 움직임과 아시아를 통치하려는 경험, 그리고 전후 서구 질서에 편입된 경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종종 ‘아시아 안의 비아시아’, 혹은 ‘경계에 위치한 국가’로 이해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본이 실제로 아시아 밖으로 나간 적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본의 역사 전체는 아시아라는 틀 안에서 끊임없이 위치를 재조정해온 과정이었다. 문제는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자신을 어디에 놓고 바라보았는가이다. 일본은 어떤 시기에는 아시아의 일부로, 어떤 시기에는 아시아를 초월한 존재로 자신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언제나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은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지만, 동시에 아시아 안에만 머문 적도 없다. 바로 그 경계의 긴장이 일본 근대사의 핵심이며, 오늘날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글/편집/번역 조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