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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3.11.21] 한국이 ‘중국의 본심’을 오판하는 이유들
[2013.11.21] 한국이 ‘중국의 본심’을 오판하는 이유들
한중관계연구원2021-01-20

‘중국이 북한을 버릴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이성현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팬택펠로우,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초빙교수

 

 

베이징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 부주석이 7월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만났을 때 그는 외교적으로 점잖은 표현 대신 북한이 더 이상 추가 핵실험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자제할 것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경제개혁 방향으로 나와줄 것을 또박또박 확실히 당부했다고 한다. 외교적이고 점잖은 수사(修辭)를 쓰면 혹시 북한의 어린 새 지도자가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말귀를 못 알아들을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보인 일련의 유화 제스처와 경제개혁 신호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이 이번에 중국에서 공산당 관계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돌아와 쓴 ‘변한 듯 안 변한 중국’ 칼럼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로 요약되는 중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한국의 큰 기대가 사실은 ‘나 홀로’ 착시현상이었다는 요지다. 한국에서 최근까지 외교부 장관을 지낸 인사를 비롯해 복수의 전직 장관급 인사가 참가한 자리에서, 중국 측은 한국인의 정서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고전 시구까지 인용하며 중국 대북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 지난 7월 27일 북한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김정은(오른쪽)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AP=연합뉴스

 

이번 글은 한국의 ‘중국통’들 사이에서 최근 몇 달간 있어왔던 가장 큰 논란을 잠재웠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을 파악하는 데만 무려 9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최근 북한을 둘러싼 한중 밀월 관계에 ‘버블’이 있음도 드러났다.

 

중국 측이 한국에 ‘차근차근’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해준 이면에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중국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커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측면이 있다. 이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중국이 한국 편을 들 줄 알고 철썩같이 믿었다가 그렇지 않자 곧 한국 내에서 반중감정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학습효과’다. 한국의 기대치를 ‘관리’하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본심’을 한국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중국이 여전히 속마음을 드러내길 부끄러워하는 사회주의 ‘극장 국가’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국의 중국전문가들에게 자동적인 면죄부를 주는 편리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통’으로 잘 알려진 어느 전직 고위 관리는 중국에서 중국학자들과 세미나를 가진 후 “중국의 대북 정책이 확실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었다. 그의 발언은 ‘정확도’에서는 떨어지지만, 그의 지위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영향력’과 ‘파괴력’을 발휘했다. 유사한 사례가 많았고, 한국 언론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가진 ‘착시 현상’은 우선 중국 안에서 북한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중국학자, 중국 민심, 중국 정부 등 주요 주체들을 서로 구분해서 보는 시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학자’로 뭉뚱그려지는 집단이 지니는 복잡성을 간과한 면이 있다. 한국 언론은 또 그들이 내놓는 다양한 시각을 추려보는 안목이 부족했다.

 

중국 말고, 한국에서 생산되어 소비된 중국의 대북정책 담론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열리는 회의에 중국에서 ‘친북’ 성향을 가진 학자들이 배제된 점이다. 한국정부가 원하는 정책에 기여해 주는 중국학자를 많이 초청해주고 또 그들에게 정책보고서 일감을 안배해주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서방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학자들 위주로 초청된 것도 아쉽다. 통역이 필요 없으니 회의 진행은 그만큼 더 수월하겠지만, 역시 중국 사회의 북한에 대한 담론이 그만큼 선별적으로 한국에 전달된 점이 있다.

 

한반도 전문가가 아닌 중국 인사들이 관련 회의에 반복되어 초청된 점도 아쉽다. 어느 중국학자는 ‘김정은’이 김일성의 아들인지 김정일의 아들인지 중국대학에서 학생들의 강의에서 자주 헷갈려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북한에 대해 한 발언은 그의 지명도 때문에 한국사회가 중국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 쪽에서 참석하는 인사들과 ‘급’을 맞추려다 보니 전문성보다는 지명도를 다분히 의식한 중국 연사 초청 관습이 생겼다. 소수의 중국 인사들이 한반도 컨퍼런스 시장을 독점하면서 중국에서도 원래 입지가 좁았던 젊은 한국통 학자들의 성장을 막는 부작용도 생겼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사회에 일었던 성난 민심과 반북정서의 제한된 파급효과를 꿰뚫어보지 못한 점도 아쉽다. 다행한 것은 중국에서도 민심이 중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대북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화가 많이 난 심리적 기제를 짚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G2’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며 ‘책임 있는 대국’을 표방한 중국이 반복적인 북한의 도발행위와 3차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한국과 같은 시각에서 북한을 ‘동북아 안보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훨씬 더 간단하고 감정적이었다. 여러 차례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북한이 중국의 체면을 깎는 것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3월 중국이 10년 만에 거행한 정권교체 행사기간에 북한이 중국의 ‘문지방’격인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고조시키자, ‘남이 잔치하는 데 훼방을 놓고 있다,’ ‘북한이 해도 너무 한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 주어야 한다’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것은 “사회주의 형제국가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라는 한 중국 정부학자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말 안 듣는 동생에게 매를 든 것이지, 형제간의 정을 끊자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은 이런 중국의 심리를 찬찬히 관찰해 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직간접적인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집단은 세 개 정도이다. 외교관, 중국에 파견 나온 한국 특파원, 그리고 소위 ‘1.5 트랙 대화’라 불리는 반관반민의 형태의 비공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학자들이다. 이 세 개의 집단 가운데 중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보의 접근하기에 가장 편리한 신분은 언론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어 등 전문성의 부족으로 중국의 대북정책을 한국에 풀이해주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복잡한 담론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느낀 ‘혼란’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이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자, 이제 한국이 ‘중국의 본심’을 모르는 이유 중 가장 흥미롭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짚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일부 중국전문가들의 ‘정책 행동주의’ (policy activism)다. 이들은 ‘1.5 트랙 대화’에도 들어간다. 이들은 안다. 중국의 대북정책에 아직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이 이미 시작된 큰 변화의 물줄기라고 본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이미 진화 (進化)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런 변화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핵실험으로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서 대중관계를 강화하여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적극적인 상황 변화’로 이어지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즉, 이들은 중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변화 여부를 가장 최전선에서 파악하고 있었지만, 현재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시각은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한국 외교부의 정책 목표와 맞아떨어졌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 한국 외교관이 할 일이 없지 않은가?”라는 발언은 현상변화를 추진하는 외교 업무의 본질을 설명해 준다.

 

‘희망의 논리’는 중요하다.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시각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아태지역 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과 주도권을 다투는 중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전략적 마인드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미·중이 세력 전이를 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경쟁과 전략적 불신이 더욱 치열해지고,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아·태 전략에 중국이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자꾸 집착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미·중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을 포기할 필요가 없고, 또 포기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중국은 하고 있다. 또한 이를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 미국과 한국의 전략이라고 중국 전략가들은 보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등을 돌린 후 대북 영향력을 상실한 사례를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자는 인식이 중국에서 최근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중국 전략가들, 중국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사학자 백영서 선생의 ‘동아시아의 귀환’이라는 책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대한제국기 한국언론의 중국 인식’이란 부분인데, 중국이 한국에 있어서 ‘가장 친숙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의 중국 정보 수준이 왜 떨어지는가’는 질문이 나온다. 정보 자체의 부족 때문인지, 정보 입수 경로의 문제인지 묻는다. 그런데 저자가 정작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정보의 판단 능력’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국에 대한 희망적 사고’가 정보 판단 능력에 영향을 끼침을 지적한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매우 유효한 지적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9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