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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4.08.07] ‘항미원조전쟁’보다 ‘조선전쟁’···중국의 본심은?
[2014.08.07] ‘항미원조전쟁’보다 ‘조선전쟁’···중국의 본심은?
한중관계연구원2021-01-20

핵 개발 포기와 체제 안정의 두 마리 토끼 잡으려는 중국
허재철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정치외교연구소 교수

 

 

북·중 관계와 관련하여 최근 흥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중국 인터넷상에서 김정은 제1비서를 희화화한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끈 것이다. 중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 ‘김정은’이란 단어만 입력하면 지금도 관련 동영상이 검색되어 손쉽게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문제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 줄 것을 중국 측에 요청했지만, 중국이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하며 뒷짐을 지고 있다고 한다. 최고 지도자의 존엄을 생명처럼 여기는 북한 사회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지금 북한이 어떤 심정일까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능력 밖의 일?”

 

그런데 비슷한 시기 중국 인터넷상에는 또 다른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작년 5월 홍콩 빅토리아 항구에서는 네덜란드 설치 예술가의 작품인 높이 18미터의 대형 고무 오리(RUBBER DUCK)가 전시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이것이 예상 외로 중국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자 중국 정부는 이 작품을 베이징으로 들여와 이화원(颐和园)과 정원엑스포 공원(園博園)에 전시를 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수익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형 전시물을 모방한 유사 대형 전시물들이 전국 곳곳에 생기는 해프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가 지난 7월 베이징의 위웬탄(玉渊潭) 공원 호수에 등장한 대형 두꺼비 전시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형 두꺼비 전시물이 전 국가주석인 장쩌민(江澤民)을 닮았다는 주장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주요 포털사이트와 SNS 등에서는 관련 글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풍자성 글로 판단한 중국 정부에 의해 신속하게 삭제됐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과연 북한이 요청했다고 하는 관련 동영상의 삭제가 중국 정부 말대로 “능력 밖의 일”이었을까?

 

항미원조 전쟁에서 조선 전쟁으로

 

한편, 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1주년이었다. 북한은 이날을 전쟁에 승리한 날이라는 뜻으로 ‘전승절(戰勝節)’이라고 부른다. 이날 역시 전승을 기념하며 각종 행사를 벌였고, 김정은 제1비서도 26일 금수산 태양궁전에 이어 27일에는 우리의 현충원 격인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를 참배하기도 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참전열사묘’를 참배했다.ⓒ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중국에서도 소위 좌파로 불리는 100여 명의 인사들이 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 모여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승리 6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기념식에서는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북한)을 원조해야 한다는 항미원조 정신 계승과 북·중 우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제 중국 전체에서 점점 소수 의견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표적 선전 도구인 <인민일보>와 CCTV 뉴스는 정전 협정일을 전후하여 관련 뉴스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단지 <신화사>와 <환구시보> 등 일부 매체에서만 관련 뉴스를 보도하긴 했지만, 아주 간단한 단신이 대부분이었고 명칭도 ‘항미원조 전쟁’이 아닌 ‘조선(朝鮮)전쟁’으로 표현했다. 작년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중국의 리웬차오(李源潮)가 국가 부주석의 신분으로 방북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그나마 ‘항미원조 전쟁’과 ‘조선전쟁’을 섞어가며 사용하는 언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특이한 경우가 됐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측면도 있겠지만 북한과의 동맹을 연상하는 ‘항미원조’ 보다는 가치 중립적인 ‘조선전쟁’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세 가지 주체, 즉 정부와 언론, 여론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물론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부가 거의 일방적으로 대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사회가 점점 다양화되어가고, SNS 등 미디어의 발전으로 중국 정부도 외교정책 수립 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북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 패러디 동영상의 제작 및 확산, ‘항미원조 전쟁’에 대한 의미 축소는 분명 지금의 북·중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의 본심

 

그런데 이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식들도 들려온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와 유엔 무역통계 데이터베이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은 중국의 대북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즉 과거 몇 차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북 FDI가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작년과 올해에도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핵 개발과 권력 교체로 북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던 시기에도 중국 정부는 오히려 국영기업의 적극적인 대북투자를 독려했다는 분석이다.

 

얼핏 보면, 이들이 서로 상반되는 사례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변화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체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본심이랄까?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더 과감하게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길 원하지만, 체제 붕괴는 중국의 앞마당을 내어주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때도 그랬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했다느니, 중국이 북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국제사회를 속이기 위한 기만전술이라느니 하는 극단적인 견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북·중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좀 더 냉정한 자세와 근거들을 바탕으로 그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9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