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5.12.03] 부이대·태자당, 중국의 금수저들! | |
---|---|
한중관계연구원2021-01-2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천박한 자본주의 벗어나려면
최근 취업난과 생활고 등으로 한국 사회에 자조 섞인 목소리가 커지면서 ‘헬조선’ 등과 같은 신조어가 난무한다. 특히 계층 사이에 가로막힌 유리막으로 계층 간 이동은 더욱 힘들어져 예전과 같이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은 갈수록 실현 불가한 일이 되어버렸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생겨난 금전 만능주의, 배금주의가 바로 그 기원이다. 이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더 급격한 발전을 이룬 중국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 불평등의 시작, 선부론(先富論)
1970년대 말, 오척단구(五尺短軀)의 거인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년)이 중국의 제2대 지도자가 되면서 중국은 개혁 개방을 맞이했다. 이후 중국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기치로 사회주의의 체제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의 장점인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반도의 약 44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중국 전역을 한 번에 발전시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덩샤오핑은 먼저 ‘일부 능력이 있는 사람과 지역을 먼저 부유하게 하고, 최종적으로 다 같이 발전하자’라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하였다. 그러면서 선진국들의 투자 유치가 용이한 동부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특구를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중국은 상해(上海)·심천(深圳) 등의 동부 연해 지역은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고, 중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이와 같은 발전의 이면에는 쓰라린 상처가 존재한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이기심’을 홀시해서 실패했듯이 선부론 역시 이를 홀시하여 지금과 같은 크나큰 사회 문제를 낳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을 홀시한 선부론과 지역 불균형
선부론을 통한 개혁 개방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이면의 부작용은 매우 참담하다. 먼저 ‘일부 능력이 있는 지역’이 부유해지면서 지역 간의 격차가 심각해졌다. 보통 한국인들은 중국의 동부 연안 지역이 발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기에 거기에서 멀어질수록, 즉 서쪽으로 갈수록 낙후되었다고 오해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서부 지역은 오히려 최근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서부 대개발’이 진행되면서 그 특혜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동부 연안 지역 바로 옆에 인접한 곳들이 소외당하고 있다. 필자가 유학 시절 머물렀던 강소성(江蘇省)의 경우 예로부터 ‘강절풍, 천하족'(江浙豊, 天下足 : 강소와 절강이 풍년이 들면 천하가 족하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지역으로, 개혁 개방 초기에도 특혜를 받았던 지역이다. 그 성회(省會, 성의 중심도시)인 남경(南京)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경제 역시 상당히 발전하였다.
강소성은 이렇게 중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이지만, 그 바로 서쪽에 인접한 안휘성(安徽省)은 중국에서도 낙후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안휘성의 성회인 합비(合肥)는 삼국지의 조조(曹操)군 장요(張遼)가 단 800의 병사로 손권(孫權)의 10만 대군을 무찔렀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같은 성회인 바로 옆 강소성의 남경에 비해 경제 발전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
이는 특히 교육·의료 등 공공 서비스에서 명확한 차이를 나타낸다. 남경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이다 보니 합비의 많은 환자들이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 남경을 찾게 되었다. 수많은 합비 사람들이 오다 보니 정작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남경 시민들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대한 불만으로 안휘성과 합비 사람들을 싫어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선부론은 지역 간 격차뿐만 아니라 지역 간의 갈등도 심화시켰다.
중국의 금수저 ‘부이대'(富二代), ‘태자당'(太子黨), ‘홍색귀족'(紅色貴族)
선부론을 통해 중국은 ‘일부 사람을 먼저 부유’하게 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렇게 축적된 재부를 다른 지역에 투자해 ‘최종적으로 다 같이 발전’하는 목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선부론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돈이 돈을 빨아들이는 자본주의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며 기회와 성공은 극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또한 당시 부를 축적한 자들 역시 기부나 자선과 같은 행동은커녕 더 악착같이 자신의 재부를 불리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우리의 ‘금수저’와 비슷한 말로 중국에서도 ‘부이대(富二代, 중국명 푸얼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개혁 개방의 물결에 합류하여 성공을 거둔 사업가들의 2세를 가리키는 부이대는 중국에서도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먼저 ‘돈이 있으면 귀신도 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有钱能使鬼推磨) 라는 중국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을 무기로 한 이들의 안하무인격 태도를 들 수 있다. 한밤중에 고급 외제차로 도심 레이싱을 즐기다가 환경미화원을 차로 치어 죽이고 돈으로 해결하려던 사건, 식당에서 행패 부려 경찰이 출동하자 수억대의 뇌물로 지역 경찰서장을 매수하여 풀려나왔던 사건 등등 각종 추악한 행태가 있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의 ‘금수저’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기 때문에 사회에 진출할 때 남들보다 훨씬 앞선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가난에 하루하루가 힘겨운 천재들이 빛을 발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자본가·대지주 등 기득권의 탄압에 저항하고 만민평등을 부르짖으며 탄생한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나자 이제는 자신들이 ‘기득권’이 되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무산계층을 탄압하는 현실이다.
공산당 고위층의 자제들이 그대로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하여 여전히 그 재부와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차기 황제를 뜻하는 태자를 활용한 ‘태자당(太子黨)’, 공산당과 혁명을 뜻하는 빨간색으로 지은 ‘홍색귀족(紅色貴族)’이란 세력들이 바로 이것이다. 인민의 편에 서서 인민을 위해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며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이루자고 했던 공산당, 결국 정권을 잡고 나자 기존의 정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은 사람을 실망시키고 있다. 가끔은 지금 하층민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공산당에 의해 제거된 지주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유럽의 성숙한 자본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자본주의는 서양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여 수백 년의 시험대를 거쳐 서서히 완숙하였다. 이러한 자본주의를 갑자기 동양이라는 낯선 땅에 이식시키다보니 자본주의의 폐단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사회에 만연한 금수저·부이대·태자당 등의 이러한 ‘천박한’ 무리들이 바로 갑작스런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그럼 자본주의의 탄생지인 유럽은 과연 어떠할까?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유럽 사회는 오히려 금수저·은수저·흙수저 등의 계층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적자생존’을 최우선시하는 냉혹한 자본주의를 수백 년간 거치다보니 사람 사이의 능력 고하(高下)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결국 능력에 따라 재부의 다소(多少)가 결정되는 것이 필연임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본주의를 뒤늦게 받아들인 우리와 비슷하지만, 이 다음부터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서양의 성숙한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계층을 인정하는 대신 귀족, 자본가와 같은 가진 자들이 자신들만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된 재부를 자신보다 갖지 못한 이들에게 기부·자선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족의 책무’라고 불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이다. ‘졸부·천상'(賤商)이라고 비웃는 우리와는 달리 서양 자본가들이 서민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서양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는 허다하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는 한 해 2조 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한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비단 기부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의 귀족들이 다니는 전통 명문 중 이튼(Eton) 학교라는 곳이 있다. 이곳의 별명은 ‘거대한 공동묘지’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귀족의 자제들이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원으로 그것도 가장 위험한 최전방에 참전한다고 한다. 학교 안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모시기 위한 무덤이 수백 개가 있다고 한다. 전쟁이 나자마자 평양으로 도망간 선조,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간 이승만 등과 비교하면 부끄러워진다.
성숙한 자본주의로
서양의 성숙한 자본주의마저도 인간의 능력에 따라 형성되는 계층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폐단의 대안으로 서양은 기부와 자선 등을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자본가들을 적대시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서민의 존경을 받으며 평화롭게 공존한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급속하게 자본주의의 성(成)과 패(敗)가 드러난 우리 역시 서양의 이러한 점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계층은 체제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체제를 근본부터 수정하지 않는 한 개선되기 힘든 문제이다. 이럴 바엔 넘치고도 남을 만큼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 한 자들에게 덜어주어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귀족으로서 의무와 자부심을 느낀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조화롭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