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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일본, 한반도 사드 배치로 ‘제2의 6.25’ 특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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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한반도 사드 배치와 ‘제2의 6.25’ 기운
얼마 전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일본의 역사학자 하라 아키라가 쓴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저자는 책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조선의 쟁탈을 둘러싼 전쟁이므로 제 ‘1·2차 조선전쟁’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언급한다.
맞는 말이다. 현재도 북방 4도(쿠릴열도) 등 국경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는 과거에 더욱 심한 마찰을 겪었다. 당시 일본은 강대국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고 본토 방위를 위해 대륙으로의 진출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전통 대국인 청을 곧바로 일본이 점령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에 먼저 대륙으로 향하는 발판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발판은 바로 조선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진출해 그곳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땅에서 청, 러시아와 전쟁을 펼쳤다. 결국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은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우리의 아픔, 외세의 기쁨, ‘6·25’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한반도와 이를 점령하기 위한 외세, 이들에 의해 우리 땅이 전쟁터가 되었던 역사는 또다시 되풀이되었다. 한반도의 비운은 1950년 6월 25일에 발생하였다. ‘6·25’는 분명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눈 민족상잔의 비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실체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었고, 우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땅에서 외세에 의해 농락당했던 것이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이 속속 공산화하는 ‘도미노 현상’을 막고자 한반도에 눈을 돌렸다. 즉, 동북아의 공산화 확산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교두보로 삼았던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앞마당인 한반도에 진출하자 중국은 당연히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와 ‘순치상의'(脣齒相依)의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다면 그것은 곧 육로를 통한 중국 침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항왜원조'(抗倭援朝, 왜에 대항하고 조선을 원조한다), 청일전쟁에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 등이 바로 그 예이다. 6·25 역시 마찬가지로 자국과 접경하고 있는 북한이 미국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실질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중국은 이를 막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제1·2차 조선전쟁과 마찬가지로 6·25에서도 역시 제일 큰 피해자는 우리 민족이었다. 전 국토가 피폐화되었고, 수백만의 인명이 이념대립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게 된 것이다.
반면 직접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중국은 각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미국은 한반도 남부를 확고하게 지배하여 한국을 중심으로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중국 역시 건국 초기의 여러 불안요소를 6·25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고, 초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의외로 선전하여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 또한 이 둘은 약 20년 후에 화해하여 현재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지만, 한반도만 여전히 둘로 나뉘어 지금도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 6·25 특수의 최대 수혜자로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는 1920년대 수준으로 후퇴한 상태였으며, 패전으로 인한 피해의식 등 최악의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이때 발생했던 6·25는 일본이 폐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당시 미군은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일본에 병참기지를 대거 설치하여 군수품을 보급 받았다. 이를 통해 일본은 미국의 뛰어난 기술을 공짜로 익힐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군에게 군수품을 판매하는 대가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였다. 이는 전후 피폐해진 일본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가져다주었고, 이 ‘어부지리’를 통해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당시 일본의 총리이었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6·25를 ‘천우'(天佑, 하늘이 도우심) 라고 했을까?
또 다시 불거지는 ‘제2차 6·25′의 그림자
최근 미국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반발하는 것은 중국이다. 그 이유는 사드 배치가 겉으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드의 레이더를 통해 미국이 중국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지난 2월 7일 광명성 4호 발사까지 이어지자,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 계획을 밝혔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날림으로 처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결과 중국은 연일 우리의 사드 배치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으며, 여러 경제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 류제승 국방정책실장과 토마스 S. 벤달 미8군 사령관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이날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한 것과 관련, 대응책으로 사드 배치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현재 무역 상황은 일본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중국에게서 벌어오고 있다. 그래도 중국에게서 더 많이 벌어 전체적으로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제재로 우리에게 경제적인 압박을 가한다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국 관광객의 입국 금지, 중국 내 반한 감정의 격화로 한국 물건의 소비 급감 등의 경제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경제적인 제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사드 배치로 갈수록 격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언젠가 무력 충돌로 치달을 수도 있다. 마치 60여 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처럼 말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또다시 외세는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을 앞세워 싸울 것이다. 물론 이 전쟁을 통해 외세는 각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고, 일본은 또다시 ‘제2차 6·25 특수’로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몫은 전쟁의 참담함 만이 남을 것이다.
우리 땅을 둘러싼 외세의 강압과 어쩔 수 없는 선택들, 진정한 자주(自主)를 누리는 것은 아마도 더 먼 훗날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옭아매는 어리석음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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