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8.12.22]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게 하는 나라, 미래가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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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과거(科擧)’를 통해 본 ‘공시족(公試族)’ 열풍 유지원 원광대 교수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9개월 연속 계속되던 고용률 하락이 멈추고, 취업자 증가 폭도 10개월 이래 최대치를 나타냈으며, 청년층의 고용도 최근 몇 개월 이래 증가하여 청년층 실업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간 하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사실 최근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단기 일자리 대책의 효과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여, 여전히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와 더불어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최근 여론조사의 현 정부 지지율 하락이 소위 “이영자현상(20대, 영남, 자영업자들의 지지율 하락)”과 “신동엽현상(신세대, 동쪽, 옆구리 중도층의 민심이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서 공통적인 것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청년층의 지지율 이탈이다. 이는 바로 청년실업, 즉 청년들의 취업난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공시족(公試族)’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공무원 17만 4000명 증원 공약사항 또한 ‘공시족’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일명 ‘공시족’이 꾸준히 증가하여 올해에 이미 40만 명을 넘어서 전체 취업준비생 중 40%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이 21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는 청년 ‘공시족’ 40만 명이 경제활동으로 거둘 수 있는 생산효과 15조 원과 이들의 가계 소비 지출액 6조 원이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 이외에도 우수 인재의 ‘공시족’화에 따른 사회 전반에 끼치는 손실은 통계를 낼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시족’ 열풍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시대에서는 관료로의 진출만이 당시 지식인들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특히 유교의 전통이 오랜 기간 정치사상계를 지배한 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는 것만이 입신양명의 유일한 통로였다. 부를 축적한 상인들 대부분도 본인뿐만 아니라 자제들을 관료로 진출시키는 것이 당면 목표였다.
중국에서 황제를 지칭하는 천자(天子)는 하늘로부터 위탁받아 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천자는 드넓은 천하를 혼자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었던 관계로 자신의 명을 받아 다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참여할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효율적인 관리 선발방법을 꾸준히 모색한 결과, ‘과거(科擧)’라는 제도가 정립됐다.
원래 중국에서는 ‘선거(選擧)’라는 관리 등용방법을 시행하였는데, 이는 각 지방으로부터 인재를 추천받아 중앙에서 일정한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향거리선(鄕擧里選)’의 약어(略語)다. 특히 한대(漢代)에는 유가(儒家)의 기본 덕목인 효(孝)와 청렴(淸廉)의 실천 정도를 기준으로 추천받아 관리를 선발하였기 때문에 ‘효렴과(孝廉科)’라고 하였다.
또한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된 중정관(中正官)들이 지방의 인재를 9품(品)으로 나누어 중앙에 천거하는 구품중정제 혹은 구품관인법이 시행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관리를 선발하던 시기에는 귀족의 전성시대로써 관리 후보자를 추천하는 권한을 중앙과 지방의 귀족이나 호족(豪族)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아무리 천자라 하더라도 이들 귀족들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명을 따르는 관리를 마음대로 선발할 수도 없었고, 아울러 자신의 정치도 펼쳐나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후 수당(隋唐)시대 ‘과거’제도가 성립되면서 천자의 관리 임명권이 조금씩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란 ‘과목별로 치루는 선거(選擧)’의 준말로, ‘수재(秀才)’, ‘명경(明經)’ 그리고 ‘진사(進士)’로 과목을 나누어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당시대에는 여전히 귀족중심의 정치가 유지됐고, 또한 ‘과거’시험의 과정 중에 귀족들에게 유리한 면접시험(신언서판‧身言書判) 과정도 있어서 귀족의 자제가 우선적으로 선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또한 ‘과거’이외에도 문벌귀족의 자제가 자동적으로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문음(門蔭)’제도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행되던 ‘과거’제도는 송대(宋代)에 이르러 전통 귀족들이 몰락하고 황제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유력 세가(世家)들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서민출신의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선비(士)들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선발하는 체제로 개편되었다.
예를 들면 호명법(糊名法)이 시행되어 이름을 가리고 채점하게 하고, 등록법(謄錄法)을 시행하여 수험생이 쓴 답안지를 다른 곳에 베껴 쓰게 한 후 채점을 하게 함으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관직의 세습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안의 배경이 없어도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관직으로의 진출이 가능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천자에 대항하는 강력한 귀족을 대신하여 천자의 뜻에 따라 다수의 민중들을 통치하는 서민 출신의 관료가 선발되는 진정한 의미의 ‘과거’가 완비됐다. 이후 ‘과거’제도는 몽골족이 통치했던 원(元)시기를 제외하고 명청(明淸) 중화 제국시대를 거치며 수도와 각 지방에 설치한 관립학교에서의 교육을 ‘과거’시험과 연계시키면서 매우 복잡하게 발전했고, 20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유일한 관리 선발 방법으로 지속됐다.
특히 명청시대에는 청년 지식인들이 각급의 학교 과정과 여러 단계의 ‘과거’시험을 거치면서 소위 ‘신사(紳士)층’을 형성하여 중앙과 지방의 지배층으로 존재했다. 물론 이들 ‘신사층’이 모두 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과 지방의 정치‧경제‧문화 등 각 방면에서 여론을 주도했다. 또한 이들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일정한 혜택 즉 요역(徭役)을 감면받는 우면(優免)특권을 누리는 특권계층이었던 관계로 시대가 흐르면서 신사층의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래서 명대 중기, 즉 15세기 중반에는 ‘신사층’에 처음 진입한 ‘생원(生員)’들이 ‘과거’시험의 최종 단계인 ‘전시(殿試)’를 통과하여 소위 ‘진사(進士)’의 지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 약 30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했다. ‘생원’으로의 진입도 여러 단계의 경쟁을 뚫어야만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가 되는 것은 실로 ‘낙바생’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시험지옥’이었던 중국의 ‘과거’제도는 처음 만들어 질 당시만 해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보된 이념과 체계를 갖춘 관리 선발 방법이었다. 이전의 시대와는 달리 가문이나 혈통과 상관없이 모든 선비는 자신이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누구나 시험을 통해 관리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거’제도는 또 다른 측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전통 중국에서의 관리가 되는 것은 그 지위가 평생 보장되는 소위 ‘종신고용’으로,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명청시대의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이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이랬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젊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과거’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게 만들어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지적(知的) 낭비를 초래하게 됐다. 또 주요 ‘과거’시험의 과목은 공허한 주자학(朱子學)적 담론에만 탐닉하게 만들어 실용학문이나 자연과학으로의 지적(知的) 전환이나 발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중국의 ‘과거’는 오랜 역사와 합리적 이념을 갖춘 제도였지만 그 이면에 내포된 부정적 요인으로 인하여 봉건 왕조체제가 붕괴된 이후 근대 중국 사회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같은 ‘과거’제도의 변천과정은 ‘공시족’ 열풍이 몰아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수많은 청년들이 엄청난 취업난 속에 취직 경쟁에 몰리면서 ‘공시족’은 이제 우리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는 전통 중국의 ‘과거’제도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변화를 선도해야 할 미래의 주인공 청년들이 ‘공시(公試)’에만 매달리는 현상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 경제의 손실이다. 4차 산업혁명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할 우리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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