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9.08.16] 홍콩 시위와 중국을 보는 눈 | |
---|---|
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홍콩에서 내려진 오성홍기 김하림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새로운 뉴스와 새롭지 않은 시각
2019년 6월 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의 불길이 몇 달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홍콩 시위대는 자발적이고 때로는 창발적인 방식으로 도심 시위와 연대 파업 등을 이어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홍콩국제공항 점거농성으로 공항의 업무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일도 있었다.
한편, 이렇듯 장기화되고 있는 홍콩 시위를 중국의 중앙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불안하기만 한 예측성 기사들이 주요 뉴스로 타전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의 접경지역인 선전에 집결하고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홍콩 시위대에 대한 강경 무력 진압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그로부터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의 비극이 다시금 상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홍콩 시위와 관련된 ‘새로운’ 뉴스들을 하루건너 전해 듣지만 그 뉴스에 접근하고 또 반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전혀 새롭지 않은’ 상투적 문법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요컨대 홍콩 문제에 내포된 역사적 복잡성을 간과한 채, 대개는 중국과 홍콩의 대립 내지 정부와 시민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의 국가권력의 문제로 쉽게 환원해 버리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인 이해방식이 중국이라는 국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더 공고히 하는 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뒤따른다. ‘오성홍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 이유이다.
‘오성홍기‘와 홍콩 시위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최근 홍콩 시위의 전개 국면에서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다. 8월 초 홍콩의 시위대가 ‘홍콩 독립’을 외치며 빅토리아 하버 부둣가에 걸려있던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내던졌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의 주요 매체들은 중국의 상징인 국기의 훼손을 곧 국가 존엄의 훼손이라고 규정하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
이와 정반대로 며칠 전부터는 SNS를 중심으로 ‘오성홍기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중국어권 연예인들의 게시글과 관련된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게시글의 내용 그대로 ‘오성홍기를 수호하는 14억 명’의 중국인 중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말해 중국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지지 표명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물론 그들의 직업 특성상 중국시장을 의식한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 그 복잡한 내막을 파헤칠 일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이 아마도 상당부분 중국 ‘국민’의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를 할 뿐이다.
▲ 2019년 8월 3일(현지 시각) 홍콩의 시위대가 빅토리아 하버 부두에 걸려있던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끌어내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 ‘오성홍기’를 마주한 홍콩과 중국 측의 서로 엇갈리는 의견 표명은 어떤 의미에서 홍콩 시위 문제에 접근하는 주류적인 해석방식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다에 내버려진 오성홍기에 대한 의미 규정이 이른바 ‘국기의 수호’라는 다분히 국가주의적 반응 양식에 입각하여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그런 까닭에 오성홍기에 실린 홍콩시위의 의미란 국가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그야말로 ‘실체’로서 ‘반중국’ 대 ‘친중국’ 간의 대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중국의 국민으로서의 호명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홍콩 시위로부터 제기된 다양한 질문은 쉽사리 왜소해져 버리고 만다.
이 시점에서 1949년 신중국의 출범과 함께 국기로 공인된 오성홍기의 역사성을 다시 되새기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이른바 ‘1949년’으로 귀결되는 중국공산당의 전사를 줄줄이 읊을 일은 아니다. 다만 당시 오성홍기에 새겨진 ‘새로운 중국’의 지향이 지금처럼 국가주의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만은 짚어두고 싶다.
오성홍기의 ‘五星’ 가운데 중심에 있는 가장 큰 별이 중국공산당을 지시한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네 개의 별이 각각 노동자, 농민, 소자산과 민족자산 계급을 뜻한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중국공산당의 영도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겠으나 이 네 개의 별은 근대 중국의 대안적 혁명세력으로서 중국공산당이 어떤 정치적 정당성 위에 서고자 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합정부와 혼합경제로 대변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 표명은 단순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기보다는 근대 중국을 관통하는 혁명의 주된 목표였던 ‘민주변혁’에 대한 실천적 경험 및 해석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대 중국의 역사가 곧 국민국가의 수립이라는 목표와 궤를 같이 했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민족주의적 동력이 무엇보다 긴요했지만, 적어도 새로운 한 시대를 열어젖힌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승인(勝因, 승리의 원인)’은 민주와 항일(민족주의) 의제를 결합시키고 평화와 민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았던 데 있었다. 1949년 오성홍기에 각인된 중국의 국가적 정체성은 최소한 ‘하나의 중국’이 아니면 모두 배제하고 억압하는 지금 같은 국가주의적 운위에 기반을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질문 양식
다른 한편으로 홍콩 시위에 등장한 오성홍기가 ‘반중국’과 ‘친중국’이라는 반/국가주의의 표현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다분히 단순화된 구도를 통해 홍콩 시위의 제 양상을 관찰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칫 홍콩 시위에 대한 관심이 이미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반중’이라는 정서를 재생산하고 강화시키는 소재를 또 한 차례 ‘발견’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관해 어떤 논의를 시도하건 결국 ‘기-승-전-일당독재’로 끝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중국을 대면하는 방식은 다분히 단선적(單線的)인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홍콩 시위 문제를 사실상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관점이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 내지 전체주의라는 구도 속에 바로 용해시켜 중국에 대한 비난의 근거를 재삼 확인하는 하나의 사례로 삼는 것으로는 홍콩 시위로부터 가시화된 복잡다단한 현실과 현상들의 역사적, 구조적 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홍콩 시위에 대한 인식과 중국을 보는 눈이 서로 직결된 것이라면 과연 중국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면서 동시에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홍콩 시민들의 외침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있는 지금,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대한 우리의 질문 양식은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