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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09.24] 사마의의 재발견, 조조의 재재발견
[2021.09.24] 사마의의 재발견, 조조의 재재발견
한중관계연구원2021-09-24

새로운 <삼국지>유교적 가치의 재해석

이용범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

 

우리가 잘 알지만, 잘 모르는 사마의

 

지난 2017년 장쑤(江蘇) 위성TV에서 제작한 <대군사 사마의> 시리즈는 한국에도 수입되어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며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1부 <대군사 사마의의 군사연맹(大军师司马懿之军师联盟)>은 <사마의: 미완의 책사>라는 제목으로, 2부 <대군사 사마의의 호소용음(大军师司马懿之虎啸龙吟)은 <사마의: 최후의 승자>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특히 2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갈량 사후의 위(魏) 내부의 권력투쟁을 그렸다는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실 우리는 사마의의 이름에는 익숙하지만, 막상 사마의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면 뭔가 탐탁치 못하다. 사마의는 대개는 제갈량의 라이벌로서 그려지고, 언제나 제갈량에게 전술적으로 패배를 거듭하나 압도적인 국력에 기반한 전략적 승리를 쟁취하는 존재로 형상화되어 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死孔明走生仲達)”같은 일화, 제갈량으로부터 여자옷을 받고서도 감내한 것과 같은 일화가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을 따름이다. 항상 부수적으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작 사마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제갈량 없이는 그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촉한정통론의 피해자?

 

사실, 사마의는 촉한정통론의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삼국지 판본에 대해 알아보면, 삼국지는 본래 진(晉)나라의 진수(陳壽)가 지은 사서(史書)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로 쓰여진 역사서로, 역대 중국왕조의 사서를 일컫는 24사에 포함되어 있다.

 

진수는 위를 뒤를 이어 건국된 진나라 사람으로, 기본적으로 진나라가 정통임을 전제한 서술의 관점을 지닌다. 오늘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점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에 가장 널리 통용된, 그리고 일본과 중국 모두에도 가장 익숙한 판본은 14세기 만들어진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이다. 연의(演義)는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나게 설명함, 혹은 그러한 책이나 창극’등을 의미하는 바, 정사 삼국지에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들어간 작품인 것이다.

 

나관중은 위·촉·오 삼국 중 촉이야말로 한의 정통을 계승한 국가로 판단하고, 서술의 중심을 유비, 관우, 제갈량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촉한 외부의 존재들은 들러리로 밀려났다.

 

그리하여 조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난신적자의 대명사로, 사마의는 제갈량의 라이벌이지만 언제나 패배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로만 여겨지게 됐다.

 

<삼국지 연의>의 관점은 20세기에 이를 때까지 동아시아를 풍미했으나,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는 또 다른 시각의 재해석들이 이어지며 어느 정도는 약화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88년 작가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새로운 대입전형 ‘논술’에 가장 도움이 된 책으로 꼽히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이문열 삼국지야말로 한국에서의 삼국지에 대한 인식을 결정지은 책인 것이다.

 

이문열의 문체는 매우 유려하고 작품의 재미도 뛰어나지만, 제갈량 사후의 부분을 극도로 축약한 것이 흠결로 꼽힌다. 촉한정통론이라는 관점과, 제갈량 사후의 분량이 줄어든 것이 사마의에게는 상당한 불행이었다.

 

가족을 위해 분투하는 서민(庶民)

 

서민, 혹은 서인은 벼슬을 벼슬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작품의 초반부 사마의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난세를 맞이하여, 일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러한 그가 본격적인 정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멸문의 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부친에게 씌인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 바쁘게 정계요인들을 찾아다니고 계책을 획책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간신히 가족을 지켜낸다.

 

그렇게 정계에 ‘데뷔’하게 된 사마의는 조조 집안의 후계자 투쟁에 휘말리게 된다. 세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조비와 조식의 고래싸움에, 사마의는 사마씨 일가의 목숨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참전하게 된다.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이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기존의 삼국지는 ‘대의’를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주요한 내러티브의 축선을 구성하고 있다. 가족은 대의를 위해 버릴 수 있는 것으로까지 형상화된다. 장판파에서 아두를 내던진 유비야말로 그 전형적인 예시이다.

 

촉한정통론이야 말로 흔들린 한(漢)의 정통을 회복해야한다는 주장에 다름아니며, 유비와 조조의 대결구도는 유가와 법가의 이념투쟁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대군사 사마의>는 대의와 이념의 차원보다는 그저 자신의 일가를 지키기위한 사마의의 분투를 오랜 분량을 할애하여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소강사회(小康社會)의 건설과 지향을 어느정도는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사마의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양수 또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지향을 내세움에 따라, 이 작품은 현대 중국의 관심사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치국의 레벨, ‘유교적 가치는 승리한다

 

사마의의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수신-제가의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조조의 후계자 투쟁구도에 참여한 이후의 모략들은 치국-평천하의 레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재가 뛰어났던 조조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던 조식을 편애했다. 이에 비해 장남 조비는 장남이라는 것 이외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장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군사 사마의>에서 조조는 두 아들을 경쟁시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조식과 조비의 참모진은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한다. 조식, 그리고 조식의 모신 양수는 과감하고 거리낌 없는 조조의 모습을 따라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조조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흐믓했을 것이다. 반면, 사마의와 조비는 ‘유교적 가치’인 충효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유교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됨에 따라, 위왕 조조의 후계자 투쟁은 보다 사회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황제의 영향력이 극도로 미미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위왕의 후계자에 사회의 시선이 모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마의는 적극적으로 ‘충’과 ‘효’를 내세울 것을 조비에게 조언하는데, 이를 통해 당대 명문가들의 호의를 얻어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조조라는 단 한 사람의 호감을 목표로 행동했던 조식과는 다르게, 조비는 광범위한 자신의 지지계층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난세의 간웅도 알고 있었다, 리더십의 이면에는

 

<대군사 사마의>에서의 조조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계선들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행동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염과 순욱이라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 출신의 뛰어난 인재들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장자계승의 원칙을 지켜낸다. 단순히 조비라는 개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장자계승의 원칙과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유교적 가치’들을 수호한 것이다.

 

오랜 혼란이 이어져 온 난세의 평정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과제였다. 당대 난세의 평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이가 조조였다. 그의 본심은 끝까지 의심받았지만,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조조는 통치에 있어 팔로우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명문사족들을 단순히 억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유교적 가치’의 의미와 중국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그것과 대립하지 않았다. 조비를 후계자로 삼은 것은, 오히려 명민하게 충효의 효용을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마의와 조조가 아닌, 욕망의 방향

 

우리가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은 <대군사 사마의>가 새롭게 그려내고 있는 인물상에 투영된 중국사회의 욕망들이다. 기존의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 시대의 중국에서 가부장제적이지 않게 새롭게 발견되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시키는 강한 원리인 ‘유교적 가치’의 회복이 그것이다.

 

이 두 측면은 아직까지는 정부차원의 긍정과, 대중차원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교적 가치’와 개인(핵가족) 단위의 ‘욕망의 협업’이 앞으로도 이어지며 시너지를 창출해낼지, 혹은 미묘한 엇갈림과 함께 어떤 긴장관계를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231528286465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