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10.01] 중국에 부는 바람, 규제(規制)인가 정풍(整風)인가
[2021.10.01] 중국에 부는 바람, 규제(規制)인가 정풍(整風)인가
한중관계연구원2021-10-01

예측하기 어려운 중국 당국의 규제

김영신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연구교수

 

최근 중국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특히 각 분야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관련한 소식이 줄지어 전해지고 있다. 국내 일부 언론매체는 이를 ‘정풍운동’이라는 표제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과거 중국공산당을 뒤흔든 정풍의 역사를 알기에,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불고 있는 바람을 규제 정도로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못된 풍조(風)를 바로잡는다(整)’는 것이 정풍의 본래 의미이다. 지난해 가을 알리바바 계열사에 대한 규제를 시작으로, 중국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풍조 바로잡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규제라 불러야 할지, 정풍이라 불러야 할지 특별한 기준을 없을 것이다. 정풍이든 규제이든 분명한 것은, 80년 전의 정풍과 현재의 규제는 일맥상통함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80년 전 중공을 덮친 어두운 그림자

 

1942년 2월 중공중앙당교 개학식에서 마오쩌뚱(毛澤東)은 ‘당의 작풍(作風)을 정돈하자’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학풍(學風)을 바로잡기 위해 주관주의를 버려야 한다, 당풍(黨風)을 바로잡기 위해 종파주의를 버려야 한다, 문풍(文風)을 바로잡기 위해 형식과 공허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연설의 핵심이었다.

 

‘세 가지 잘못된 풍조에 반대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整頓三風)’는 마오쩌뚱의 지시에 따라 당시 중공중앙 소재지였던 옌안(延安)에 광풍이 몰아쳤다.

 

1943년 9월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서 마오쩌뚱은 1928년 이래 중공당사를 검토하라는 ‘적폐청산’의 지시를 내렸다. 마오쩌뚱의 ‘정적’으로 분류된, 이른바 국제파에 대한 비판과 압박이 특히 심하였다.

 

국제파의 영수 왕밍(王明)은 자아비판 끝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국제파와 인연이 있는 저우언라이(周恩來), 펑더화이(彭德懷) 등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1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옌안정풍

 

마오쩌뚱의 암묵적 동의하에 정풍은 ‘숙청’으로 변질되었다. 중공 특무제도(特務制度)의 창시자이자 중공중앙 정보부장 캉성(康生)이 앞장섰다.

 

중공 특공(特工) 부문의 최고책임자가 정풍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은, 정풍운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수많은 중공당원이 ‘특무(特務)’, ‘반도(叛徒), ‘반혁명(反革命)’으로 몰려 3년간 1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로도 마오쩌뚱은 옌안에서의 성공적 경험을 바탕삼아 반복적으로 풍조 바로잡기를 진행했다. 1957년 ‘반우운동(反右運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예계 규제는 문풍(文風) 바로잡기의 시작?

 

연초부터 중국은 연예인과 연예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내놓았다. 불법 혹은 부도덕 행위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 퇴출되고,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유명 연예인의 공개적인 활동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의 방송규제기관인 광전총국(廣電總局)은 예능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은 애국적 기풍 장려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금까지의 규제는 연예인과 연예산업에 국한되어 있지만, 그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장담할 수 없다. 연예계로부터 시작된 규제와 감시는 옌안시기 문풍(文風) 바로잡기의 시작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과 국가의 뜻에 따르라

 

옌안정풍시기 중공중앙은 각급 기관에 학습소조를 조직하여 중앙에서 지정한 관방문건과 개인저작 22가지를 학습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 마오쩌뚱의 저작이 6편으로 가장 많았다. 스탈린과 레닌의 저작도 포함되었지만, 이들의 저작은 차요한 것이었다.

 

정풍운동위원회는 ‘마오쩌뚱의 저작은 정확하며, 중국의 국정과 혁명의 실제 투쟁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다. 진지하게 독서하고 반복하여 독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연초 중국 당국은 ‘정치적 입장이 정확하지 않고, 당과 국가와 한마음 한뜻이 아닌 사람’도 방송에 출연시킬 수 없도록 했다. 권력층, 곧 중공과 그 당원을 풍자하거나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의 이익 최상, 상급기관 영도에 복종,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반대를 핵심가치로 삼아 진행하였던 옌안시기 당풍정돈의 그림자가 보이는 대목이다.

 

규제가 낳은 부정적 결과는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9월의 마지막 주에 접어들자 ‘중국의 전력난’ 관련 소식이 연일 외신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력 소비국인 중국이 전력난으로 31개 성급 행정구역 가운데 절반인 16곳에서 전기 배급제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전력난은 생산활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중국기업 뿐만 아니라 포스코·삼성·엘지 등 중국에 공장을 둔 우리 기업들도 가동을 멈추어 손실을 입고 있다.

 

인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심각한 전력난으로 “이른 아침부터 전기가 나가 애들 밥도 못해줬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 중인데 전기가 시도 때도 없이 끊겨서 수업을 들을 수가 없다”는 인민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전력난은 화력발전용 석탄 공급 감소와 중국 당국의 강력한 탄소 배출 억제 정책 등에 연유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탄소 배출 억제야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이고, 전 지구적인 경향이니 그로 인해 전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은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호주로부터의 석탄수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한 화력발전용 석탄 공급 차질은 중국 정부의 규제가 가져온 결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탄소 배출 억제는 “내년 2월 동계올림픽 때 파란 하늘을 보장하고 국제사회에 저탄소 경제를 진심으로 추진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의자가 반영된 것으로, 중국의 전력난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전력난은 중국 인민의 생활과 경제생산에만 영향을 미치는, 중국 내부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있다. ‘조만간 세계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80년 전 정풍과 현재 규제의 공통점과 차이점

 

80년 전 옌안의 정풍운동은 사상통제와 통일에 초점을 맞추고, 궁극적으로 마오쩌뚱 일인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정치운동이자 권력투쟁이었다. 풍조 바로잡기의 대상도 중공당원에 한정되어 여파가 인민들에게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지금의 규제는 그 대상이 중공당원에 한정되지 않고 여파가 인민과 사회 전반에까지 미치고 있다.

 

중국 당국의 규제는 기존의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결정이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장래의 불확실성에 기업과 인민은 당의 눈치를 보고 움츠러 들 수밖에 없다. 나아가 당국의 정책에 대해 인민과 기업은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불신은 결국 중공의 지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3017223391001#0D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