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12.31] 시진핑, 중국 ‘항미원조’ 전쟁 되살리는 이유는? | |
---|---|
한중관계연구원2021-12-31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중국, 애국적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 확대 의도는 무엇인가 한담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
2021년 9월 30일, 국경절 특수를 겨냥하여 개봉한 ‘항미원조’ 블록버스터 <장진호(長津湖)>가 중국 역대 흥행 랭킹 1위인 <전랑(戰狼)2>(2017)의 기록을 깨고 애국주의 주선율 영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리고 12월 17일 또 다른 ‘항미원조’ 영화 <압록강을 건너서(跨過鴨綠江)>(이하, 압록강)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2020년 12월 30일부터 관영 CCTV 채널에서 방영된 첫 ‘항미원조’ 드라마 <압록강>(40부작)을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영 CCTV 채널의 첫 ‘항미원조’ 드라마는 지난 2000년 참전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항미원조>(30부작)이다. 약 5년 동안 3000만 위안을 들인 대작이었으나, 당시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을 배려하여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국내의 지속적인 공개 요청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방영되지 않고 있다.
이토록 중국에서 공공연한 금기처럼 여겨졌던 ‘항미원조’ 전쟁이 참전 70주년을 맞이한 2020년 전후로 화려하게 귀환한 배경에는 패권 다툼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갈등이 있다.
▲ 지난해 중국 관영매체 CC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서(跨過鴨綠江)>
시진핑은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항미원조’ 전쟁을 다시금 ‘항미(抗美)‧국가 수호(保國)’의 ‘위대한 승리’로 선포했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지원군 정신은 ‘대미항전’ 불사의 대의 앞에 ‘애국애당(愛國愛黨)’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이 같은 최고지도자의 기념식 담화는 곧바로 문화 콘텐츠 정책으로 이어지며 ‘항미원조’ 전쟁의 문화정치 향방을 결정하는 지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20년 7월 17일, 중국 안팎으로 송출되는 모든 미디어 프로그램을 검열하는 중앙기관인 국가광파전시총국(國家廣播電視總局)은 ‘항일전쟁’, ‘코로나 방역 전쟁’과 함께 ‘항미원조’ 전쟁을 중요 제재로 선정하고, 주선율(主旋律) 가치를 효과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관련 프로그램의 제작 및 관리 지침을 내렸다.
‘주선율’이란 중국 사회의 특수성과 ‘사회주의 특색’을 띤 중요한 대중 문예 창작 형식으로, 주류 이데올로기, 국가 정책 선전, 주도적 문화가치 체현, 역사와 현실을 반영한 건강한 창작물을 의미하는데, ‘주선율’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간 금지에 가까웠던 ‘항미원조’ 주제를 개방하고 향후 관련 작품들이 대거 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압록강>은 2000년 이후 20년 만에 관영 CCTV 채널에서 방영한 첫 주선율 ‘항미원조’ 드라마가 되었고 저녁 황금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관영 채널에서 제작, 방영된 것인 만큼, 마오쩌둥 전문 배우인 탕궈창(唐國強), 저우언라이(周恩來) 전문 배우인 순웨이민(孫維民) 등이 참여했고 맥아더와 트루먼 등 미국의 주요 인물 또한 최대한 닮은 배우들을 기용하여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또한, 중국 ‘항미원조’ 전쟁의 역사 교과서를 펼친 듯, 신중국 수립 직후부터 전쟁 발발, 휴전협정까지 긴 폭의 시간대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중공 중앙 지도부부터 인민지원군 병사 그리고 ‘항미원조’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중국 인민의 생활상까지 이 전쟁을 둘러싼 모든 면면을 전방위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주요 전투로 꼽히는 ‘상감령’, ‘장진호’, ‘금강천’ 등을 상세히 다루면서 전쟁영웅들이 총망라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영 드라마로서 국가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런 특징들을 볼 때, 이 드라마는 향후 주선율 주제로 부상된 ‘항미원조’ 문화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 과정에서 바이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일정 기간의 과도기를 거쳐 ‘항미원조’ 서사 담론이 구축되는데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압록강>은 국내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40부작의 드라마에서 편집해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내용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항미원조’ 대중문화 콘텐츠의 제작 방식이다.
2020년 ‘항미원조’ 제재의 금기 해제 후, 관련 문화 콘텐츠 제작이 확대되었고 현재까지만 영화 4편, 드라마 2편, 애니메이션 1편, 다큐멘터리는 10편으로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한 상황이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시리즈나 드라마‧영화의 공동제작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화 <장진호>의 경우 시리즈로 기획되었고, <장진호의 수문교(長津湖之水門橋)>, <결전 상감령(決戰上甘嶺)>, <위대한 전쟁, 항미원조(偉大的戰爭·抗美援朝)>가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 드라마를 영화화 한 <압록강을 건너서>의 포스터
드라마 <압록강>도 처음부터 영화와 공동 제작하는 것으로 기획되었고, 2020년에 방영된 드라마 <전화의 용광로(戰火熔爐)>(13부작) 역시 2021년 <영웅중대(英雄連)>로 제작되어 개봉된 바 있다.
이러한 드라마‧영화의 공동제작 방식은 관객들이 드라마 시청을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블록버스터 <장진호>처럼 흥행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영화 <압록강>과 <영웅중대>의 흥행 실적은 기대 이하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획 방식은 단기간 내 ‘항미원조’ 대중문화 콘텐츠의 양적 확대라는 목표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 기억의 귀환과 대중문화 콘텐츠 확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2018년 무역 갈등으로 시작된 미·중 갈등은 정치, 외교, 군사 전 방위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글로벌 패권 다툼으로 장기화할 것이 확실시된 이상, ‘대미항전’ 불사를 선언한 시진핑 시대에 ‘항미원조’ 전쟁 기억은 대중들의 ‘반미’와 ‘애국’이라는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고취할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항미원조’가 1950년대 전쟁기부터 현재까지 서구라는 타자에 대항하여 중국의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집단 기억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변화를 통해 중미 패권 다툼 속에 요구되는 새로운 중국/인의 자기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301521363642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