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2.04.15.] 노자와 ‘중국식 사회주의’는 공존 가능한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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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2-05-0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경쟁에 지친 중국인들이 선택한 철학자, 노자요즘 중국에서 철학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왕동위에(王東嶽)이다. 그런데 중국의 저명한 블로거 완웨이강(萬維鋼)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왕동위에를 비판했다. 왕동위가 쓴 <물연통론(物演通論)>이 전부 틀렸다고 몰아세웠다. 완웨이강이 왕동위에를 비판한 것은 역으로 말하면 왕동위에가 그만큼 유명하다는 말일 것이다.
왕동위에는 유려한 입담으로 동서철학을 모두 아우른다. 중국의 네이버라고 할 수 있는 바이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가 했던 수많은 강의들이 업로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그를 “자유학자”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가 자유주의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대학이나 기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유명대학의 교수가 아닌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 철학자인 왕동위에가 유명하게 된 것은 아마도 뤄전위(羅振宇)에 의해서이다. 뤄전위는 중국 CCTV에서 “경제와 법”, “대화”, “결전상장”, “중국경영자” 등 수많은 TV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으로,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그는 왕동위를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상가라고 칭찬했다.
1%만이 살아 남는다
체약대상(遞弱代償)이란 개념은 왕동위에가 내세우는 핵심 개념이다. 그것은 세대를 거칠수록 점점 더 약해진다는 의미이다. 우주의 진화과정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종이 영원히 그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것 같지만,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그 예로 든다.
왕동위에는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약해지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만물의 속성이 점점 더 풍부해지고, 형태도 점점 다양해진다고 말한다.
인류 문명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문명도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개체들의 의존성이 점점 더 커져서, 결국은 그 생존력은 점점 더 약해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자신이 속한 구조에 대한 의존도도 커지며, 그렇게 사회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대상(代償)이라고 한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대신해주어야 살 수 있다. 추우면 난방기구가 필요해지고, 더우면 에어컨이 필요해지듯이 말이다. 이렇게 창조와 혁신도 발생한다. 그리고 그 창조와 혁신 중 1%만이 살아남는다.
왕동위에의 이론은 언론과 기업들에서 환영받았다. 개혁개방 이후 수십 년간 승승장구하던 중국이 다시 생존과 경쟁의 문제에 직면한 지금, 그 누구보다 그 위기를 직감한 분야는 언론과 기업일 것이다.
근대중국에서 위기에 처한 중국에서도 지식인들에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역사는 진화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천하의 공리이므로 어느 나라도,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진화론은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생존욕구를 불어넣기 위해 널리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개혁개방 이후에 태어나 풍요 속에서 자란 세대들, 80후, 90후 세대들이 사회의 중추가 된 시대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위기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그들에게 21세기 진화론을 말해준 사람이 바로 왕동위에이다.
그렇게 생방송에서도 초청되고, 기업가들을 위한 강좌에도 수차례 초청되었다. 그래서 그를 “대사(大師)”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당대의 노자, 왕동위에
왕동위에의 사상은 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왕동위에는 스스로를 “당대의 노자”라고 말한다. 왕동위에는 노자는 미래를 위한 사상이라고 한다.
그는 노자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한다. 왕동위에는 노자를 중국사상사에서 유일한 철학자라며 현대의 진화론을 이해한 고대철학자라고 말한다. 노자가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라고 한 것이 바로 진화의 법칙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왕동위에는 서양철학과 중국철학을 대비시켜 말한다. 오늘날 세계를 잠식한 자본주의는 서양철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서양철학을 비판한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는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마디로 위기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은 서양철학에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철학이 위기를 구할 수 있는 열쇠일까? 그는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의 전통학문인 “국학”은 이미 쇠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양철학이 해답일까? 그것은 더욱 아니다. 여기서 노자가 등장한다. 해답은 노자의 이상향인 소박한 원시문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자는 “소박함을 지니고, 사욕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을 왕동위에는 원시 공유제 사회라고 해석하였다.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경쟁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왕동위에는 현대중국의 사회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히려 긍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노자의 “천도(天道)”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자의 이상향은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크기는 작고, 인구는 적은 나라이다. 수레도, 배도, 무기도 필요 없는, 즉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 사회가 그의 이상향이다.
전쟁을 하기 위해 세금을 거둬들이고, 군사를 훈련하는 등 수많은 일들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무위(無爲)”라고 얘기한다. “무위”정치를 하는 제후야말로 성인이라고 노자는 얘기한다. 그렇게 되면 이웃나라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닭이 울고 개가 짖어도 상관하지 않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노자가 바라는 세상은 싸움이 없는 세상이었다.
노자와 현대중국
현대중국에서 노자사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엄청난 물질적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만큼 인류의 생존환경을 척박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환경 파괴, 도덕의 상실, 생존 경쟁, 부패의 만연, 등등 모두 그 결과라고 본다.
인간이 물질적 욕구를 추구하게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이 바로 노자이기 때문에 노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공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무기인 셈이다.
사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난 후 도덕의 상실, 부패의 만연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범람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개혁개방을 통해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도시가 번영하고, 교통도 발달하고,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혜택이 골고루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 계층, 일부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 중국인 모두 배부르고 등 따뜻한 “소강사회”가 달성되었다는 선언을 한 중국은 이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공동부유”를 부르짖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노자는 아주 유용한 철학적 합리화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검이다. 노자의 사상을 알면 알수록, 그것이 사회주의보다는 자유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하며 강압적인 국가를 부정하고, 작고 자유로운 국가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노자철학은 중국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