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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3.05.26] 블라디보스토크는 동해의 홍콩이 될 수 있을까?
[2023.05.26] 블라디보스토크는 동해의 홍콩이 될 수 있을까?
한중관계연구원2023-05-26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과 러시아의 관세 협정, 러시아가 중국에 준 선물

 

15일 중국 관세청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하는 화물은 내국 운송으로 취급하겠다고 관영 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이는 중국 동북지방 지린성의 낙후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중국 남부와 서해 지역의 경제 발전지역과 물류망을 연결하는 조치라고 한다.

 

보통 어떤 화물이 자국의 관세선을 통과하는 경우는 수출로 간주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는 화물은 실제로는 관세선을 통과하지만 중국 동북 지방에서 남부 항구 도시로 향하는 화물은 관세선을 통과하지 않는 것처럼 예외로 둔다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일전쟁을 전후로 해서 동해 연안 항구 중 가장 급속도로 발전했던 항구도시이다. 1860년대 41명이던 인구는 1907년 11만 8000명으로 늘어났다, 이 무렵 부산의 인구는 7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러일전쟁 패전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보스토크는 국제 무역항으로서 기능을 꽤 훌륭히 수행했다.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조선과 일본, 중국, 미국으로의 무역은 지속되었고 도시는 번성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철의 장막이 시작되자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으로만 기능하게 되고, 소련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가 된다. 냉전 시기 블라디보스토크는 동해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을 동시에 제압하고 태평양 너머의 미국과도 대립하는 근거지 역할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두 번째 번영기는 최근 20여 년 동안이었다.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된 이래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의 경제와는 큰 상관이 없는 항구였다.

 

중국이 내세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사용의 이유는 지린성의 경제 촉진인데, 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통해 에너지 동반자로서 긴밀한 관계를 시작했다.

 

러시아의 자원을 중국에 공급하는 것은 양국 간의 경제교류 규모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 국내 물류의 블라디보스토크 경유의 경제적인 효과는 미지수다. 유럽으로 향하는 중국 상품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하기보다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 역시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니라 철도 같은 육상 물류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국내 무역항으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에 큰 매력이 있지 않다. 지린성의 공업 생산 능력이 중국 국내 물류망이 감당 못 할 정도도 큰 것도 아니고, 중국 국내 철도 운송이나 다롄항을 통한 해상 운송보다 경제성이 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사용하는 문제는 러시아에서도 비중 있는 뉴스였다. 러시아의 언론 매체는 이 사건을 러시아와 중국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고 보면서 푸틴의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인 극동 러시아 지역의 개발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물화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면서 도시의 경제적 잠재력이 향상되어 동해의 홍콩처럼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러시아의 기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사용을 중국에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한 것에 대한 구실에 불과해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한 연해주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영토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어서(소련 시절 중국은 이미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여기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반가운 것이 아니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러시아는 연해주의 중국인이나 만주족들을 연해주 밖으로 내모는 정책을 써왔다. 혹시 모를 영토 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을 중국에 허락한 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우리 항구를 환적항으로 개방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에 이런 특혜를 주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러시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되고 있다는 어조의 기사를 실었고, 이를 다시 전달한 국내 언론사들은 ‘중국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사용권을 163년 만에 되찾았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이 사건을 전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보나 과장인데, 러시아는 중국에 무관세 통관을 허용한 것이지 항구 자체를 할양하거나 조차하는 배타적 권리를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경제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중국은 연해주와 동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적 이익을 얻지만, 러시아는 중국과의 친선 유지 외에는 별다른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얻지 못한다. 또 물동량의 규모와 상관없이 중국이 국내 운송에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이용한다는 것은 동해에서 중국의 정치, 군사적 개입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해안 도시로의 항로는 기묘하게 최근 이루어진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의 정찰비행 항적과 거의 같다. 이미 중국의 폭격기가 동해에서 빈번하게 정찰 활동을 하고 있어 중국의 함대가 동해로 진입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번 관세 협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고립무원의 러시아가 중국에 내민 선물에 가깝다. 중국이 제공하는 공산품은 지금 러시아 국내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명줄이다. 중국마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면 러시아 경제는 순식간에 파탄이 날 것이다.

 

동해를 교역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30년 전부터 있었다. 1990년대 초 북한은 두만강 하류 접경지역인 나진선봉경제자유경제무역지대를 통해 중국의 동북지역과 러시아의 연해주, 그리고 한국의 산업을 결합하려 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다면, 나진선봉경제자유경제무역지대가 실현될 수 있었다면, 대립과 갈등의 공간이었던 두만강 하류 지역과 동해는 평화와 공존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블라디보스토크는 실제로 동해의 홍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시진핑 주석(왼쪽)과 푸틴 대통령. ⓒAP=연햡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