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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3] 한·중 역사인식 차이, 어디까지 왔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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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0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얼마 전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촉발된 한국사 교육의 강화 방안과 필요성을 놓고 아직까지도 정치권, 교육계 등 각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 국가의 역사교육 현황을 보면 그 국가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일들을 암기하는 과목에 불과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지적하는 말임과 동시에 역사 교육이 인간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학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고 밝은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역사교육의 강화를 통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중국 랴오닝성 장하현 소재 고구려 성산산성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이 표지석에는 “고구려 민족이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원이었다”라는 문구와 “고구려 정권은 중국 동북 소수민족 지방 정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이 문구는 중국 정부가 새긴 것으로, 붉은색 테두리 안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 해당 문구다. 사진은 표지석 앞면(왼쪽)과 뒷면의 모습 ⓒ연합뉴스
이는 한국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화 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지기(知己)뿐만 아니라 지피(知彼)하려는 자세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와는 육지로 인접하고 역사영역이 중복되어 역사인식의 차이가 자주 발생하는 중국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절실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그 역사가 매우 장구하며 내용 역시 매우 풍부하다. 또한 우리와는 특수한 지정학적, 정치적 관계로 인하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우리는 일말의 경외감까지 느끼며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현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 곧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러 현상은 과거의 것을 기초로 변화·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과거의 것들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는 그 생명력이 길고, 또한 파급 효과가 매우 넓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 중국의 제반 현상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과 교류와 협력을 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대립하고 충돌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중 양국은 역사인식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충돌하고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있어서 쌍방 간의 오해와 차이는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우면서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역사와 문화”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을 기반으로 ‘대중화주의’를 국가적 전략으로 추진해 왔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비한족(非漢族)문화권에 대한 일련의 역사공정(歷史工程)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위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위구르족과 관련이 있는 서북공정, 티베트지역과 관련이 있는 서남공정, 몽골지역과 관련이 있는 북방공정, 동남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남방공정 그리고 타이완과 오키나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해양변강공정 등이 있다.
이러한 역사공정들 중 일부는 이미 완료되었지만,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중국의 변방에 대한 역사공정의 최종 목표는 변방문화를 중원문화와 연결시켜 자신들이 추진하는 ‘대중화주의’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일련의 역사공정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이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에서는 그동안 전설 시대로 여기던 하(夏)왕조를 비롯하여 상(商)과 주(周)왕조를 역사시대로 편입시키면서 구체적 연대를 확정하였다. 하왕조의 시작을 B.C. 2070년, 상왕조의 시작을 B.C. 1600년, 그리고 주왕조의 시작을 B.C. 1046년으로 확정하면서 중국역사의 유구성(悠久性)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중화주의’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이론적 기초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 뒤를 이어 2001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까지 진행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의 제1단계에서는 중화 문명의 발생과 변화·발전과정에 대하여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6년부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제2단계에서는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문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제2단계 공정은 아직 진행 중에 있어서 최종 연구결과가 보고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요하문명론’을 통해 볼 때 중국의 의도를 짐작할 수는 있다.
즉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요하지역으로 중국 문명의 기원을 옮김으로써 몽골과 만주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도 모두 중국 문명에서 발원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동북공정문제를 중국에서 진행해 온 다른 역사공정과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즉 중국의 다른 역사공정도 함께 분석하고 연구하여야 정확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도 준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료수집 차 중국 동북지역의 당안관(檔案館)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부터는 우리 역사 관련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현지의 자료조차도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렇게 역사연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자료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응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한 때 중국의 이러한 자국 중심적 역사인식을 두고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하면서 국내 여론이 매우 흥분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대응태도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국수적 태도를 가급적 지양하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무슨 결론을 내야 할 것처럼 서둘러서도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는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조바심을 가지고 서둔다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이렇게 불리한 여건에서는 먼저 동북공정과 직접적 관련성이 적더라도 중국의 여러 역사공정과 약간의 관계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양한 각도로 폭넓게 연구를 진행하여 폭넓은 연구업적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간접적이던 직접적이던 다양한 여러 분야의 연구가 축적된다면 객관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내용도 서서히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고구려연구재단’이나 ‘동북아역사재단’ 등이 설립되어 우리 역사의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지원하여 진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는 여러 영역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앞으로 한중 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유용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양국 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단순히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중국 역시 최근 급성장하면서 G2국가로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범했던 과오를 또 다시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나친 자국 중심적 역사서술태도를 버리고 주변 국가에 대한 상호 존중의 역사인식태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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