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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3.10.10] 시진핑 주석의 현대판 ‘정풍운동’, 성공할까?
[2013.10.10] 시진핑 주석의 현대판 ‘정풍운동’, 성공할까?
한중관계연구원2021-01-20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한중관계 브리핑’] 안으로 끓는 중국
최형규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한중정치외교연구소 초빙교수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중심의 5세대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은 아직 평온해 보인다. 시 주석이 반부패를, 리커창(李克强)총리가 경제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이전 지도자들도 늘 그랬던 터라 별 놀랄 게 없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중국 권력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태풍전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최근 발생한 세 가지 사례를 보자. 우선 지난달 말 허베이(河北)성의 스자좡(石家庄) 성정부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약간 자만심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양충융 상무부성장)

 

“회람 보고서를 청취할 때 인내심이 부족하며 귀찮은 것을 참지 못한다. 이런 태도는 존경받기 어렵다.”(짱성예 성 기율위 서기)

 

비판 대상은 바로 그들의 직속상관인 장칭웨이 성장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날 상호비판은 중국의 최고 권력인 시 주석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9월 23~25일 허베이성에 머물며 모든 성 간부들에게 ‘자아비판’에 앞장서 달라고 주문했고 이 지시 직후에 바로 이런 ‘상관비판’이 나온 것이다. 문화대혁명 때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시 주석의 설명은 이렇다.

 

“상호비판과 자아비판은 당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무기여서 활성화가 필요하다. 모든 당원은 당성을 강화하고 자신과 동지, 당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지는 자세로 비판과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 이 무기는 사용할수록 날렵해지고 효과가 좋아져 민주적 집단지도체제의 철저한 관철, 당내의 엄격한 규범 확립, 당성과 원칙에 기초한 단결을 촉진할 수 있다. 비판은 공공의식에서 출발해야 하고 실사구시에 근거해야 하며 시비를 분명히 가르고 진위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 지난해 11월 확정된 중국 5세대 지도부. 가운데가 시진핑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이 정도면 현대판 ‘정풍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풍운동은 삼풍정돈(三風整頓)의 줄임말로 당원을 교육하고, 당조직을 정돈하며, 당의 기풍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유지와 반대파 제거를 위해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 주석의 목적은 분명하다. 정풍을 통해 당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자신의 권력과 통치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주창하는 부패척결을 위해 간부들의 정신부터 개조하겠다는 목적도 크다. 그러나 자아비판과 상관비판이 확대되면 60~70년대 문화혁명 당시 극심한 이념투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런 사회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천위(陳宇) 중국군사과학원 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마오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는 12월 신판 ‘마오쩌둥 어록집’을 발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중국의 새로운 마오이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경제적 과실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불만이 마오 시대에 향수에 젖어들며 새로운 분배정의를 요구하는 투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얼마 전 부패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을 받은 보시라이(薄熙來)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추종자들이 합세할 경우 좌우 이념투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보시라이 전 서기는 충칭시 당서기 시절 개혁개방 성과의 평등과 공평 분배를 외치며 공산혁명가 부르기 운동을 전개해 현지 주민들로부터 ‘서남왕'(西南王)이라는 별명까지 받았다.

 

지난달 29일 현판식을 가진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 출범 현판식에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참석하지 않았다. 이 시험구는 금융 산업 개방을 통해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바꿔보려는 리 총리의 개혁야심이 응축된 곳이다. 당초 리 총리는 참석할 예정이었고 행사 담당자들도 상하이 훙차오 호텔에 총리의 방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총리의 불참 이유는 불과 2개월 전 한 회의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7월 말 리 총리가 상하이 자유무역구 구상을 밝히면서 리코노믹스(리커창의 경제정책)를 선언했다. 이 때 은행·증권·보험 등 3개 금융 감독위원회 주임들이 모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존 경제특구에 있는 서비스를 위해 또 다른 특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리 총리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했다. 그러나 반발세력은 지난 수십 년 뿌리를 내린 철옹성 관료집단이다. 섣불리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면 개혁은 고사하고 혼란만 가중된다는 걸 리 총리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리 총리는 좀 더 긴 호흡으로 반개혁파와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보수파든 개혁파든 요즘 부글거리고 있는 이유다.

 

지난 8월 초 열린 허베이(河北)성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매년 휴가를 겸해 당 원로와 국가지도부,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현안을 논의하는데 올해는 권력 파벌 간 인사 갈등으로 현안을 깊이 있게 논의 못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의가 열리기 전 당과 국무원 주요 국장급 인사안을 본 후진타오(胡錦濤)전 국가주석이 대노해 회의에 불참했다. 전 국가주석이 이듬해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에 불참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회의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중심의 상하이방(상하이시 고위직 출신 정치세력)과 시진핑 주석 중심의 태자당(혁명원로나 고위관료 자녀 출신 정치세력)이 연합해 인사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후 전 주석 중심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고위직 출신의 정치세력)이 반발하면서 인사안은 보류됐다. 11월 열리는 3중전회(당 중앙위원회3차전체회의)전까지 당내 치열한 계파 간 인사 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3중 전회에서는 시 주석 중심의 새 지도부가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 통치이념과 경제발전 모델의 전환을 핵심으로 한 주요 개혁정책을 확정한다. 그러나 새 지도부가 이같은 갈등과 대립을 잘 수습하지 못하면 중국은 11월 3중전회에서 한바탕 ‘혼란의 홍역’을 치를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7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