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4.10.16] 지팡이 짚고 등장한 김정은, 김일성 후광 노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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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1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건재한 김정은과 요동치는 한반도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최근 북-중 접경 지역 북한 근로자들의 ‘노동당 창건일’ 분위기를 전해왔다. 북한 인력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북-중 접경 지역에 공식 파견돼 일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정부 간의 첫 인력 고용 계약에 따른 것이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투먼(图们)과 훈춘(珲春) 등 지린(吉林)성의 옌볜(延边)조선족자치주. 그동안 중국의 북한 근로자들은 매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일이면 일을 하지 않고 경축 공연 등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린 성 지린 시에서 당 창건 기념일 행사가 열리는데, 이 행사에는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경우 북한인 1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주로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 시의 북한 대표부 인원, 그리고 북한 인력이 일하는 공장의 대표로 구성됐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필자의 훈춘 취재원은 당 창건일을 앞두고 북한 근로자 내부에서 “이번엔 우리도 가야겠다”는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투먼과 훈춘 지역의 공장 여러 곳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 250명가량이 행사에 가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들은 10월 9일 새벽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기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지린 시로 떠났다. 이 때문에 이들이 속한 공장은 10월 9일 공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당 창건일 기념행사가 열린 곳은 지린 시의 위원(毓文) 중학교.
위원 중학교는 고 김일성 주석이 1927년부터 2년 반 정도 다닌 학교이다. 이곳에는 김 주석의 기념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는 김 주석이 쓰던 책상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고, 청년시절 사진과 수령 시절 사진, 아내 김정숙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이 기념도서관 앞 교정에는 군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김 주석 동상이 서 있다. 북한 근로자들은 김일성 주석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는 위원 중학교에서 당 창건일 기념행사를 마친 뒤 이 날 저녁 버스를 타고 투먼과 훈춘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10월 10일에는 북한 근로자들이 파견된 모든 공장에서 당 창건일을 기념하는 민속 공연을 하루 종일 펼쳤다. 이 때문에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은 모두 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기념일 행사까지 참여한 근로자가 있는 공장은 10월 9일과 10일 이틀 연속으로 공장을 쉬어야 했고, 나머지 공장들은 10월 10일 하루만 운영을 중단했다. 하지만 공장주들은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제조업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각한 중국 땅에서 부지런하고 솜씨 있는 우수 근로자를 데리고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운이기 때문이다.
당 창건일에 전달된 ‘김정은 건강 축원‘ 꽃바구니
당 창건 69주년 당일 세계의 이목은 평양으로 쏠렸다. 40여 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정은 제1비서의 등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이 날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적 중대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김 제1비서의 신변을 둘러싼 각종 추측과 설이 난무했다. 김정은 뇌사설, 실각설, 북한 내부 쿠데타설 등이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을 놓고 조금만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설은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우선 북한 매체들이 김 제1비서의 건강 이상을 당당하게 보도하는 점에서부터 이런 설(說)들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 제1비서는 지난 7월 초부터 공개 행사에서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면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됐다. 특히 9월 25일 방송에서는 그가 현지 지도할 때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편하신 몸”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건강 이상을 인정했다. 북한 매체가 최고 지도자의 건강 이상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 창건일인 10월 10일 <노동신문> 3면의 보도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은 “주조(駐朝; 주 북한) 무관단, 중국항일혁명열사 장울화 가족, 일본 단체들, 공화국 영웅 안동수 유가족이 노동당 창건 69주년을 맞이해 ‘김정은 원수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쓰인 꽃바구니를 김 제1비서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당 창건일에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제1비서의 건강을 축원하는 내용이 담긴 점이 주목된다.
‘김정은 전격 등장‘에 막 내린 ‘억측‘
김정은 제1비서는 10월 14일 북한 매체의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제1비서가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 주택지구 등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비서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과거 보도 관행으로 보면 전날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이 맞다면 그가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은 9월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1일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언론들은 이 소식을 긴급으로 타전했다. ⓒAP=연합뉴스
현지 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최룡해 당 비서 등 실세들이 동행했다. 북 매체들은 김 제1비서가 지팡이를 짚은 채 서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동영상 공개는 하지 않았다.
그의 ‘깜짝 등장’ 속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환하게 웃는 김 제1비서의 뒤편에는 소형 전동차가 대기하는 장면이 공개됐는데,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발이 불편해 전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제1비서가 언론에 공개된 10월 14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할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이 1945년 소련을 등에 업고 평양에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던 날과 일치한다. 김 주석이 지팡이를 애용했다는 점에서도 김 제1비서의 모습에서 김일성 주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의 ‘깜짝 등장’은 선대의 후광 효과를 노린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잠적 40일 만에 김정은 제1비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난무했던 각종 소설 같은 억측은 사라졌다. 김 제1비서가 지팡이를 짚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현지 지도에 나선 배경에는 이처럼 난무하는 억측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롤러코스터 타는 한반도 최근 남북 관계는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모처럼 반전의 기회를 맞는가 싶더니 다시 급랭했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당일 북한 최고 실세 3인의 전격 방남(訪南)으로 들뜨던 화해 무드는 10월 10일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한 북한의 총격과 이에 맞대응하는 남한의 총격이 있었던 것. 남북 간 상호 총격전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최고조를 치달았다.
북한 당국이 “삐라를 살포하면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 메시지를 보낸 와중에, 그것도 북한의 중대한 국가 행사 당일에 굳이 전단 살포를 강행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할 경우 북한의 도발이 어느 수위까지 갈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북한은 대남 사이트를 시작으로 <노동신문> 보도, 북한 당국의 공식 반응에 이르기까지 “대북 전단을 계속 살포하면 더 강한 물리적 충격을 가하겠다”고 거듭 위협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 다행히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이 “아직 선택의 기회는 있다”며 여지를 남겨둔 가운데 우리 당국의 신중하고도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천안함 배후‘ 등장…‘5·24 조치 해제‘ 모색? 이런 와중에 어제(15일)는 남북 군사 당국자가 3년 8개월 만에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북한 대표단 가운데 2명이 주목을 끌었다.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이다. 북한의 정찰총국은 각종 대남 공작업무를 총괄하는데 그 수장이 바로 김영철 총국장이다. 그는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4군단장이었던 김격식과 함께 북한 군부 내 대표적 강경파로 꼽히는 인물로 우리 정부가 천안함 피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인사이다.
▲ 지난 15일 남북은 비공개로 장성급 군사 회담을 가졌다. 사진은 회담 전 악수하고 있는 남한 수석대표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북한 단장인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 ⓒAP=연합뉴스
리선권 정책국장은 지난 2010년 5월 기자회견에 나와 우리 정부가 제시한 ‘폭침의 증거’는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천안함 피격 사건의 상징적인 인물 2명이 이번 회담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제재인 ‘5·24 조치’의 해제와 관련해 북한이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 위원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서해상에서 있었던 군사적인 충돌사건에 대해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선에서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일단 첫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은 천안함 도발을 부인하며 사과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해 어떤 입장의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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