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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중국에서 열리는 전국인대(全国人大), 정체가 궁금하다
[2019.02] 중국에서 열리는 전국인대(全国人大), 정체가 궁금하다
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중국에서 열리는 전국인대(全国人大), 정체가 궁금하다

 

 

2019년 3월은 중국에서 양회(两会)가 열리는 시기이다. 양회는 1959년 이래로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를 줄여서 부르는 것이다. 이 중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국인대’)는 입법의 업무를 담당하며 매 5년을 한 기(届)로, 매 1년을 한 차(次)로 한다. 이에 따라 2019년 3월로 예정된 회의는 제13기 제2차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될 예정이다. 이를 맞아 이번에는 전국인대 탄생과 발전 과정에 있어 큰 흐름을 짚어본다.

 

 

1. 건국 초의 과도기

건국 초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도 확정. 그러나 건국 초기 각급 인민대표 선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그 직권을 대행함.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마오쩌둥(毛泽东)은 그에 근거 임시로 조직한 전국인민대표회의(全国人民代表会议, 전국인대 前身에 해당함)에 대해, 그 개최를 “하나의 큰 일로 여겨 행하라” 요구하고, “인민 정부의 모든 중요한 업무는 전국인민대표회의에 맡겨 토론하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밝히며 그 중요성 강조함. 일종의 제도적 과도기.

 

2. 제도 확립 성장기

1953년 하반기 전국 범위 보편 선거 시행, 이에 근거 1954년 9월 제1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 개최. 이는 전국 범위에서 전국인대 수립 의미. 본 회의에서 중국 헌법, 중앙 각 부문 및 지방 조직법률 제정, 국가 지도자 및 기관장 선출. 또한 “一五” 계획, 연도 경제 계획, 예산 등을 비준. 전국인대 매우 활발했던 시기. 그러나 1957년 하반기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며 활동에 적신호. 실례로 제2기 제3차 전국인대 세 차례 연기, 연도 경제 계획, 예산 등의 직권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음.

 

3. 문화대혁명 침체기

문화대혁명 시작 이후로 전국인대 활동 대부분 정지됐음. 해당 기간 인민대표 및 선거제도 유명무실. 1964년 12월 제3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 이후 약 10여 년간 중단. 각급 기관, 지방인대 모두 임시권력기구 ‘혁명위원회’로 대체. 1975년 1월 개최된 제4기 전국인대 회의는 선거로 대표가 선출되지 않았음. 그러나 ‘사인방(四人帮)’ 내각 구성 계획 좌절은 유의미. 저우언라이(周恩来)와 덩샤오핑(邓小平)을 핵심으로 국무원 조직하고, 국가 발전과 국민 경제에 대한 중요한 계획 재천명.

 

4. 개혁 개방 도약기

1978년 2월 제5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 개최함, 이후 각급 인대 활동 재개. 이어 제2차 회의 형법, 형사소송법, 선거법, 인민법원조직법, 중외합자경영기업법 등을 제정. 1982년 12월 제5기 전국인대 제5차 회의에서 새 헌법 통과, 헌법이 기본법 지위를 회복함. 1993년 제8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규정한 헌법 수정안 통과, 1999년 제9기 전국인대 제2차 회의는 “의법치국 실행,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 기술한 헌법 수정안 통과. 전국인대 회복과 도약의 시기임.

 

5. 신시대로의 전환기

2003년 3월 제10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에서 159명의 상무위원을 선출했는데, 그 중 일부 젊은 전문가 진입에 성공,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구성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함. 2013년 전국인대대표 “도시-농촌 동비례(도시와 농촌 대표 같은 수의 인구 대표함)” 선거 첫 시행. 기층 농민 대표 401명으로 전체의 13.4%, 지난 기에 비해 5.18% 상승함. 2018년 제13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에서 헌법 수정안 통과, 국가 주석 3연임 금지 조항 삭제. 국내외 정세 변화 따른 다양한 변화 반영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