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9.06.21]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말해주는 것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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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동아시아 ‘탈냉전’과 ‘동아시아적 시각’의 간극 정규식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홍콩 시위의 역사적 복합성
2019년 6월부터 홍콩에서 전개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반대 시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9년 7월 12일에는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16일에도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 참여함으로써(홍콩 총인구는 706만 명),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공식 사과와 현 입법 기간 내 입안 포기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시위 지도부는 법안의 완전철회와 람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끝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홍콩 도심을 79일 동안 점거하면서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던, 이른바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은 한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를 이뤄낸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홍콩인들도 캐리 람의 퇴진을 끌어낼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결의를 보였다.
한편 시위 중에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자부심’이 표출되기도 했고, 각계에서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연대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아무리 민주주의가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이 말한 것처럼 “모두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싣는 텅 빈 기표”일 뿐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과정’에는 언제나 민중들의 저항과 갈등이 역사적 맥락과 순간마다 켜켜이 쌓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홍콩 시위에서의 ‘민주’는 역사적 복합성이 간과된 채, 상당부분 단순한 반중(反中)으로만 치환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탈역사적이고 탈맥락적인 시좌에서는 홍콩 시위가 갖는 복잡한 사상적·실천적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의 정당과 시민단체가 공히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연대를 표시했다는 사실이 홍콩 시위의 복합성을 잘 드러내 준다. 따라서 홍콩 시위에 대한 분석은 ‘민주주의/독재’의 구도나, 이에 기초한 정치지형 구분으로서의 진보/보수 혹은 좌/우의 구도로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 2019년 7월 21일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검을 옷을 입은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시위대 과잉 진압 조사와 처벌 등을 요구하면서 행진해 ‘검은 바다’를 방불케 했다. ⓒ EPA=연합
동아시아에 탈냉전 시대는 도래했는가?
이러한 홍콩 시위의 복합성은 우리에게 이미 ‘오래된 질문’이 되어버린 ‘동아시아에 탈냉전 시대는 도래했는가’라는 문제를 다시금 마주하게 한다. 일찍이 1993년에 최원식은 <탈냉전 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이라는 논문에서 탈냉전 시대를 맞아 “협량한 민족주의를 넘어 동아시아 연대의 전진 속에서 진정한 동아시아 모델을 창조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한국에서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동아시아론’의 포문을 열었던 이 논문은 탈냉전시대의 도래와 동아시아의 지각변동에 대한 예리한 통찰(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중소분쟁의 종결과 한중수교, 중국의 세계 경제 체제로의 진입 등)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차원의 민중세상”을 열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민중연대를 강조했으며,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백영서의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 ‘이중적 주변의 시각과 복합국가론’ 등 다양한 형태의 동아시아론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26년이 흐른 지금, 동아시아에서의 ‘탈냉전 시대 선언’은 너무도 빨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탈냉전 시대와 민중중심의 동아시아적 시각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주지하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의 근대화 과정, 즉 식민과 탈식민,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역사적 과정은 ‘근대적 국민국가 만들기’라는 세계적/권역적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아시아는 특수한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며, 지리·역사·정치·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은 식민주의, 민족주의, 냉전이데올로기, 제국적 상상이 착종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반도의 분단체제이며, 중국 대륙과 홍콩 및 대만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복합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냉전적 유산의 복합성과 혼종성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이질성을 초래함으로써, 여전히 갈등과 대립의 양상이 되풀이되어 표출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의 ‘1989년 천안문 사건’은 중국 내에서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며, 망각이 강요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홍콩과 대만에서는 매년 각종 추모식이 대규모로 거행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국민당 정부에 의해 3만 명의 원주민과 시민이 살해당한 대만의 ‘2.28 사건’도 국공내전과 내성인 및 외성인 간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기억과 망각이 혼종 되어있다.
이러한 냉전구조의 복합성이 2014년에 발생했던 홍콩의 ‘우산혁명’과 대만의 ‘해바라기 운동’에서 표출된 것이며,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도 아직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 냉전구조’의 복합성에 정위(正位)되어야 한다.
즉 단순한 ‘반중'(反中)이나 ‘자유주의적 민주화’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식민과 냉전,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구도 속에서 부침을 겪어온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함으로써, 비민족주의적이고 아시아 권역(regional)적인 사유를 시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권역적 사유‘로의 전환과 민중연대의 가능성
잘 알려져 있듯이 이번 홍콩 시위의 근저에는 ‘홍콩인’들의 중국의 홍콩 정책에 대한 불만과 정치·사회·경제적 위기감이 깔려있다. 현재 홍콩의 행정수반은 직선제가 아니라, 친중파가 다수인 선거위원단의 투표로 선출되고, 중국 정부의 최종임명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안이 시도되었던 범죄인 인도 관련 개정법안은 행정수반과 법원의 결정만으로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나라들에도 쉽게 범죄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따라서 홍콩인들은 인권운동가나 반중 인사들이 언제라도 용이하게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홍콩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시위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러한 사회적 위기와 불만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국 식민지 시기의 억압과 차별에 맞섰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더욱이 냉전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홍콩 자본주의의 모순과 계급갈등 및 정체성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홍콩 시위는 ‘신냉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작금의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 재편의 시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과거처럼 폐쇄적 형태의 양극체제가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통합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하에서의 갈등과 분화가 새로운 진영논리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중 간 무역전쟁이 기술과 금융, 군사 분야로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중국 외교정책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간 무역 분쟁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과 미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도 ‘핵심현장’의 하나로 등극한 것이다.
최근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대만 정치대 국제사무학원과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아시아 평화에의 위험’을 주제로 대만에서 공동 개최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번 홍콩 시위를 ‘독재와 민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홍콩의 시위가 중국과 대만 간 대결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 시위는 ‘신냉전’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탈냉전 시대와 민중중심의 동아시아적 시각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일 수도 있다. 즉 비민족주의적이고 아시아 권역(regional)적인 사유의 공간을 열어젖힐 수도 있다. 또한 홍콩 시위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현재 한국과 홍콩, 그리고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적인 위기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을 재발견할 것을 더욱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적 형식은 실제 정치적 주체들이 갈등과 적대적 관계로서 마주치는 ‘정치적 공간’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공간들에서 ‘제도정당이나 당-국가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사회운동들’이 새로운 저항성과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동아시아 권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한 상호참조와 연대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동아시아에서의 탈냉전과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차원의 민중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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