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19.07.05] WTO 체제, 수명 다 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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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연구원2021-01-2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중국으로부터 보복조치 ‘배운’ 일본 윤성혜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중-미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5월 열린 중미 협상이 결렬되자, 때마침 중국에서 희토류 수출 규제 이야기가 나왔다. 희토류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휴대폰, 컴퓨터 등과 같은 현대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제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중국이 희토류 광산물 및 정련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에서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조치는 미국의 핵심 제조산업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로 간주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2009년 동중국해 다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尖角列島)의 영유권 분쟁으로 촉발된 외교 갈등에서 희토류를 무기화하여 일본을 무릎을 꿇린 바 있다.
여전히 중국이 희토류 최대 생산국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전 세계 희토류는 이미 과잉생산 되고 있고, 중국의 희토류 소비가 급증하여 중국 또한 곧 희토류 순수입국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재가 예전처럼 그리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미국을 단순히 경제적 제재로 압박하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만의 셈법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북아에 부는 무역보복조치의 바람
중미 무역분쟁을 비롯해 얼마 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는 하나같이 국제 무역분쟁의 최근 추세를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각 국가의 일방적 제재조치가 국제정치‧외교적 불만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WTO 국제무역 체제에서 회원국간 자유무역을 방해하거나 불공정무역행위에 따른 경제적 피해에 기인하여 대상국가에 대해 일방적 경제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문제를 통상 문제로 풀려는 해법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러한 일방적 조치의 근거가 WTO 법률체계에 있지 않고, 자국 법률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미국 통상법의 301조에 따른 무역 상대국가에 대한 무역장벽 조사 및 위반내역 판단, 그에 따른 보복조치가 대표적이다.
미국 통상법 301조는 국제통상법률체제에서 그 합법성에 논란을 일으켜, WTO 분쟁해결기구로부터 미국이 301조에 의거한 직접적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을 금지시킨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무역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때마다 301조를 상대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썼다. 중미 무역전쟁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중심의 국제무역질서가 구축 된 이래로 어떤 국가도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국력과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고, 미국은 국제통상규범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용했다.
문제는 중국이 뒤늦게 국제통상질서에 편입되면서, 국제통상규범의 활용 모델이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경제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그랬던 것과 같이 국제무대에서 정치든, 경제든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이용하고 있다.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D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를 보면 오히려 그 수단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을 볼 수 있다.
국제규범에 저촉되지 않도록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통해 제재조치를 취하기보다 사회주의 체제를 활용하여 비공식적 방법으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한했다. 또 그 목적에 있어서도 실현된 조치의 복원이나 교정이 아니라 단순 보복행위였다. 이에 더해 일본도 한국의 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한국의 주력 상품의 주요 부품에 대한 수출제한을 발표했다. 너도나도 정치적 불만을 경제적 보복조치로 풀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계에 다다른 WTO 통상규범
정치적 불만을 통상문제로 해결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용하는 횟수가 최근 들어 빈번해 진다는 것은 국제규범이 국가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미국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국제무역체제인 WTO도 그 발전이 멈춘 상태라 현재의 통상질서를 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그 역할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가는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산업도 진화하는데, 상품무역 시대에 머물러 있는 WTO 규범이 오늘날의 무역질서를 관장하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WTO 규범을 약화시키는 데는 미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WTO는 자국법에 의거한 일방적 경제조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근거하여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규칙이라는 것이 한번 예외를 인정하거나 그것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 적절하게 제재할 수 없다면, 그 규칙은 규칙으로서의 권위를 잃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국제규범을 자국의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미국으로부터 배웠다. 일본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향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며칠 전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발표한 수출규제의 내용을 보면, 과거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때와 똑 닮아 있다.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을 WTO에 제소하여 승소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통상규범의 맹점이라 할 수 있는 비관세장벽을 활용하여 표면적으로는 WTO 결정에 따른 시장규제완화 조치를 실시하는 반면, 결과적으로는 수출제한 정책을 일부 유지시켰다. 정치적 보복행위에 대한 학습효과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드는 대목이다.
정치보복조치 일상화에 대비해야
동북아는 역사적 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언제든지 역사문제로 인해 정치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이념 대립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적 대립이 빈번하게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 미국, 일본 등 관련 국가들이 정치외교 문제에 따른 경제적 보복조치가 일상화 된다면, 한국이 매번 곤혹을 치러야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대립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지금의 혼란 상태는 꽤나 오래 유지 될 것으로 보인다. WTO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통상규범이 더욱 강화되든 아니면 WTO와 같은 강력한 통상규범이 다시 출범 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분간은 중국과 미국 간의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이고, 국제규범이 이를 유효하게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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