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04.09] 중국 ‘한정판’ 운동화, 수백만원에 거래된 이유는
[2021.04.09] 중국 ‘한정판’ 운동화, 수백만원에 거래된 이유는
한중관계연구원2021-04-09

애국적 소비와 사악한 투기

김영신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신장(新疆)

 

중국대륙의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는 중국 다섯 개 소수민족자치구 중 하나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8배로 중국에서 육지 면적이 가장 넓은 성급행정구역이자 중국 국토 총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신장의 상주인구 2530만 명 가운데 위구르족이 1000만 명 이상이다. 공업화가 뒤쳐진 신장의 주요 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이다.

 

세계 최대의 면화 소비국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면화 생산량이 많은 중국에서 신장 면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20-2021년도 중국의 면화 생산량은 595만 톤이었다. 신장에서 생산된 520만 톤의 면화는 중국 전체 생산량의 87%, 세계 생산량의 23%를 차지한다. 신장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면화의 생산과정이 문제가 되어 작금 중국에서는 ‘애국적 소비’ 열풍이 뜨겁다.

 

신장 면화 수확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지난해 중국이 신장지구에서 위구르족을 포함한 수십만 명의 소수민족을 면화 수확에 강제 동원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아동까지 면화 수확 노동에 동원된 것이 확인되면서, 여러 글로벌 패션 기업이 중국에서 수확하는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와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BCI(Better Cotton Initiative)를 배후로 지목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BCI는 2009년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다. ‘지속가능한 면화 생산’이라는 목표에 따라 면화 재배 시 독한 농약과 살충제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부당한 노동력과 아동 노동을 방지하며 원면의 공급사슬의 투명성을 증진하는 것을 취지로 삼고 있다.

 

H&M의 성명 발표와 중국의 반응

 

스웨덴의 의류업체인 H&M은 지난해 9월 성명에서 “신장의 강제노동과 소수민족 차별 관련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신장에서 생산되는 면화 구매 중단을 선언하였다.

 

H&M이 성명을 낸 지 반년 넘도록 중국 내에서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2021년 3월 22일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이 신장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자 중국 소비자들의 분노는 H&M으로 향했다.

 

이에 3월 24일 H&M이 중국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며 신장 생산 면화 불매를 재차 선언하자 중국에서는 더욱 거센 반발이 일었다. H&M은 성명에서 신장 내 강제 노동과 종교 차별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향후 신장 내 어떤 의류 제조공장과도 협력하지 않고 이 지역에서 제품과 원자재도 공급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인들은 ‘강제 노동’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해당 기업들에 대한 불매에 나섰고 중국 톱스타들을 기용한 패션 기업들은 모델들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종료 선언을 당하기도 하였다. 중국 내 주요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H&M 상품 판매가 중단됐다. 아울러 지도 앱에서도 H&M 매장이나 쇼핑몰 위치가 표시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은 SNS 서비스인 웨이보(微博)에 “신장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서 중국에서 돈을 벌고 싶은가”라며 H&M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그룹 에프엑스 출신 빅토리아와 엑소 레이는 웨이보 공식 계정에 “나는 신장 면화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캠페인 포스터를 공유하고 해시태그를 붙여 업로드했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 중인 이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K팝 그룹으로 활동 중인 에버글로우의 왕이런 역시 같은 내용의 캠페인 포스터를 게재했다. 엑소 레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 노동으로 인해 중국의 면화를 쓰지 않겠다고 주장한 수 개의 글로벌 브랜드와도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성명을 낸 바 있다.

 

서방 패션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과 애국적 소비

 

H&M에 대한 집중포화로 시작된 중국의 서방 패션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은 이후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갭, 버버리 등 BCI 핵심 맴버 10여 개 브랜드가 주요 타깃이 되었다. BCI와 이들 브랜드가 인권 탄압과 강제 노동 등이 문제가 된 신장에서 생산된 면과 면사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보복이다.

 

반면 중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리닝(李寧)과 안타(安踏) 등 기업들은 다투어 신장에서 생산된 원면(原綿)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표명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안타는 최근 BCI 퇴출을 선언하였다. 리닝은 자사는 BCI에 가입하지 않았고, 신장에서 생산된 원자재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는 등 강한 기조를 보이던 중국인들의 분노의 강도가 이전보다 약해지기는 하였지만, 애국적 불매운동의 여파는 엉뚱한 곳으로 번져갔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국제적 대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중국인들은 국산 제품 소비에 나섰고 그 영향으로 한정판 스니커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사악한 투기

 

4월 초부터 중국의 인터넷 상거래장에서는 리닝과 안타의 한정판 운동화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였다. 안타에서 발매한 499위안(元)의 도라에몽 협업 운동화는 열 배 가까운 4599위안의 가격표가 붙었다. 더 황당한 것은 리닝에서 발매한 한정판 농구화는 1499위안이던 판매가격이 4만 8889위안까지 올라 무려 31배나 폭등했다. 운동화 한 켤레 가격이 800만 원이 넘는 것이다.

 

애국적 소비 열풍에 편승한 황당한 가격 상승에 ‘이전에는 돈 없는 사람이 리닝을 샀는데, 이제는 돈이 없어 리닝을 사지 못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과거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만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닝 제품을 구입하였는데, 지금은 가격이 너무 올라 리닝 제품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이다.

 

한정판 운동화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투기를 위해 고가의 운동화를 다량으로 매입하는 사례가 이어지자 급기야 <신화사>(新華社)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국의 관영매체는 이런 현상에 대해 ‘애국적 소비를 빙자한 사악한 자본 놀음’이라며 연일 비판적 목소리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한정판 스니커즈를 투자상품으로 간주하고 거래하는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가 유행했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중국의 중고신발 거래시장은 매년 35% 이상 성장했다. 2019년 중국의 스니커즈 리세일 시장은 10억 달러에 달했다.

 

신장 면화 사건 이후 달라진 점이라면, 과거에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 시리즈와 아디다스의 이지 시리즈가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면 지금은 안타와 리닝 등 중국 국산 브랜드 신발이 새롭게 인기 투자상품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애국적 소비 열풍에도 여전한 중국 젊은이들의 나이키 사랑

 

애국적 소비 열풍에 직격탄을 맞았던 나이키는 그 와중에도 얼마 전 에어 조던과 덩크 로우 시리즈 신제품을 출시했다.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인터넷상에서는 수십만 명의 중국 소비자가 다투어 상품을 구입했다. 전문가들은 나이키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25.6%에 달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며, 대체할만한 브랜드가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그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애국적 소비의 열풍이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지금, 나이키 제품을 사기 위해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신장의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외국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 효과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중국 네티즌들은 이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082026392786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