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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07.23] 미국편도, 중국편도 아니다
[2021.07.23] 미국편도, 중국편도 아니다
한중관계연구원2021-07-23

미중 대결 구도, 실리적 외교 절실하다

최재덕 | 원광대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미중패권경쟁이 국제질서의 화두로 대두된 이래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적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위태롭게 여겨져 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강화 기조에 한국이 어느 정도 부합해야 할 것인가?’, ‘한미동맹 강화로 중국의 경제보복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1세기의 세 번째 십 년이 시작되자마자 국제정세는 미중패권경쟁과 코로나 팬데믹,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맞물리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 정세를 면밀히 파악하고 국익 우선의 자강(自强) 전략을 수립하여 국제질서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중국과의 대결 구도 내에서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 그러나 동맹 강화를 위해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포기하거나 동맹국들이 미국의 패권 강화를 위해 희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동맹 강화는 상호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각국이 미국을 상대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다자주의와 국제적 리더십 강화가 ‘미국이 우선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은 모든 국내외 정책에서 더욱 미국 우선주의 추구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미국 제품 우선 구매)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동맹국들의 반발에도 EU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유지하는 등 미국 경제 재건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포린폴리시>가 미국의 무역·경제 정책을 “조금 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국 우선주의”일뿐이라고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EU(유럽연합)는 바이든 행정부가 표방하는 대서양동맹 복원에 동의하지만, 미국과 EU가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으로 상정하고 공동대응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견이 있다.

 

2021년 2월 19일 G7 정상회의에서 대서양동맹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미국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과 독일의 이익이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했고, 중국 못지않게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미국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는 피할 수만은 없는 유럽의 일부이며 유럽은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자체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EU와 중국의 교역 규모는 5860억 유로(약 780조 6000억 원)로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EU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 후 빠른 경기 회복세를 이어간 것과 더불어 트럼프 전 행정부가 유럽과 벌인 무역분쟁으로 생긴 미국과 유럽의 통상 균열의 여파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중국의 무역 및 기술 관행에 대한 우려를 미국과 공유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더 확대하고 있다. 2020년 12월 30일 7년 만에 타결된 중-EU 투자협정은 투자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 국유기업 행동 의무조항, 기술 강제 이전 및 기타 왜곡된 관행 금지, 보조금 투명성 강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1차 미중무역협정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 재건이 시급한 유럽으로서 미국과의 민주주의 연대를 위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접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1년 2월 12일 화상회의로 열린 쿼드(QUAD) 첫 정상회의에서 세계 백신의 60%를 생산하는 인도가 백신 생산력을 더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4개국이 연대하여 안전한 백신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획기적인 쿼드 파트너십을 시작했다.”고 평가했고, 하르시 바르단 인도 외무 장관은 “인도의 백신 생산 확대는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시노백’ 백신 외교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가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합의는 ‘백신 이기주의’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백신 공급 확대라는 주요 현안을 주도하면서 쿼드의 약한 고리인 인도의 쿼드 가담에 정당성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2020년 유혈 충돌이 벌어진 중인국경분쟁 이후 중국의 안보위협을 헤징(hedging)하는 수단으로 쿼드에 전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또한, 이란은 이란 경제가 중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21년 3월 향후 25년간 중국과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핵합의(JCPOA) 이행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4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란 핵합의(JCPOA) 당사국 회의에서 중국이 미국의 선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이란 편에 섰다.

 

지난 30년간 미국은 냉전 종식 후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자국이 구축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내에서 리더 역할을 해왔고 중국은 자유무역체제 속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해왔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하여 유럽, 인도, 아세안, 호주, 남미 등 많은 국가가 미국과 안보협력, 중국과 경제 협력에 치우쳐 있다.

 

따라서 미·중의 압력에 직면한 국가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미중패권경쟁이 뉴노멀이 된 시기에 중요한 것은 미중패권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신냉전이 도래에 대한 우려와 군사적 충돌 위험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은 현 상황을 왜곡하여 판단하고 미·중 사이에서 성급하게 어느 한 편을 선택하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전 세계가 유기적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의 대중국경제의존도가 더욱 상승한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의 이분법적인 접근은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사안별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협력과 견제를 조율하고, 미·중의 편 가르기에서 중립적 위치를 취하며 실리적 외교를 취하고 있다.

 

인권, 기후변화, 첨단기술 협력 또는 국제법과 국제질서 수호 등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와 보편적 가치에 대해 미국과 같은 입장에 서겠지만 중국과 깊은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인프라 투자, 공산품의 수출입, 관광과 교육 분야 등에서 중국과 급격한 디커플링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과 같은 편에 서서 중국의 발전을 막자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신냉전 도래나 미·중의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안보적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념적 대립에 기반한 냉전 시대로의 회귀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인다.

 

미중패권경쟁이라는 도전적 과제는 기회요인과 위험요인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 냉전 구도 심화에 따른 안보 불안, 중국의 핵심이익 침해로 인한 경제보복 등 국가발전을 심대하게 저해하는 위험요인을 관리하면서 한중 경제 협력의 질적 개선을 모색하여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산업을 함께 할 매력적인 국가로서의 성장해야 한다.

 

또한, 한미동맹 강화로 안보 불안을 낮추되 한미동맹 강화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하며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유지하여 미중의 갈등으로 한반도에 냉전적 구도가 심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신북방·신남방 국가들과 경제적, 외교적 협력을 확대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사안별 국익 우선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전략적 모호성의 한계와 미중 간 선택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국제질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에 한국은 미중의 대결 구도에 지나치게 침착(沈着)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 미·중·러의 역학 구도 및 유럽과 아세안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창의적 대안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221453399223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