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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08.15] 중국 여성학의 선구자 리샤오쟝, 그는 누구인가?
[2021.08.15] 중국 여성학의 선구자 리샤오쟝, 그는 누구인가?
한중관계연구원2021-08-17

당에 의한여성해방에 반기를 들다

한담 | 원광대 HK연구교수

 

작년 초, 중국의 성(性) 사회학자인 리인허(李銀河)의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하기>(2020, 아르테)가 출간되어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리인허는 1952년생으로 일흔을 앞둔 중국의 1세대 여성학 연구자이나, 동성애가 금지된 중국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와 재혼하고 LGBT 운동에 앞장서는 등 중국 전통에 내재된 성차별과 고정관념에 맞서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중국 여성학의 시작을 열어젖힌 학자는 리인허가 아닌 또 다른 1세대 연구자 리샤오쟝(李小江, 1951~)이다.

리샤오장은 여전히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리인허나 서구 페미니즘 입장에 서있는 왕쩡(王政) 등 다른 1세대 연구자들과 비교해 볼 때, 현 중국 페미니즘의 주류라고 말할 수 없으며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강조하는 본질주의적 여성관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녀의 젠더적 특징이 자연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다고 보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관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그녀는 어째서 선천적이고 자연의 생리 구조에 기초한 여성의 ‘본질’을 놓지 못하는 걸까?

 

여성해방을 이룬 중국에서 사라져버린 여성

 

1949년 신중국 수립과 함께 마오쩌둥은 법과 제도적으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여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중국 전통의 가부장제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 1951년생인 리샤오쟝은 ‘남녀가 평등’하고 더 나아가 ‘남녀가 모두 같다’는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러나 결혼을 계기로 그녀는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특히 출산의 순간부터 기존의 삶이 뒤흔들릴 정도의 큰 변화를 겪었다.

 

당시에는 오로지 이데올로기적인 남녀평등을 교육받았을 뿐 기본적인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이나 임신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본인의 체험에서 깨달은 ‘남녀는 같지 않다’라는 인식은 ‘여성 주체 자각’의 필요성으로 나아갔고, 리샤오쟝이 기존의 ‘계급해방’ 담론에서 여성 문제를 독립적인 범주로 분리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역사를 비롯한 ‘여성해방’ 즉, 노동하는 ‘무쇠 처녀(Iron Girl)’상에 대한 폄하와 매력 없음이 이야기되기 시작했고, 리샤오쟝은 이 시기 여성 연구 분야의 선두에 서서 처음으로 중국 ‘부녀해방’의 기본 전제인 ‘남녀는 모두 같다’는 구호에 질의를 던졌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대는 물론이고 1980년대 역시,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중국 부녀해방은 완성형으로 받아들여져야 했기 때문에 ‘남녀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낙인찍혔으며, 중국 여성해방에 대해 의심하는 것 또한 혁명 성과를 부정하는 ‘반동’ 행위였다. 따라서 1980년대 리샤오쟝의 주장은 학계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리샤오쟝의 본질주의입장과 그에 대한 비판

 

1980년대 리샤오쟝의 여성 연구가 중국 부녀해방에 대한 경험자로서의 반성 즉, ‘남녀는 평등하나, 절대 같지 않다’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는 그녀의 ‘본질론’으로의 접근이 쉬워진다.

 

그녀에 따르면, 인류 재생산의 역할을 하는 여성의 ‘본질’은 자연의 생리 구조에 기초한,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성별 차이이며, 이러한 특성이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 차이를 부정하고 배제해버리면 여성이 자신의 생명과 삶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Female)은 태어난다’에 가까운 리샤오쟝의 입장은 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젠더’ 이론을 수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성 불평등을 자연화할 수 있으며 여성을 다시 전통으로 회귀시킨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젠더’ 개념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들어온 시기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World Conferences on Women)’ 전후이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국제연합이 주최하고 전 세계의 정부 기구와 비정부 기구가 참여하는 본 대회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첫 번째 국제적인 행사였으며 중국 여성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주의의 전지구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 본 대회를 분기점으로 리샤오쟝은 중국 주류 학계는 물론 서구 여성주의와 갈라지게 된다. 의견 차이는 해외 기금의 중국 유입과 특히 ‘젠더’ 이론을 중심으로 한 서구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비롯되었다.

 

리샤오쟝이 생각하기에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구미(歐美) 사회의 역사 경험을 중심으로 하므로 중국의 역사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풀어 말하면, 오랜 시간 여성의 자각을 통해 여성 운동을 이어온 서구와는 달리, 중국은 여성의 자각이나 요구에 앞서 ‘당에 의해’ 해방되어버린 까닭에 일찍이 법과 제도적 평등은 이뤘으나 여성의 주체적 자각이 부족했고, 문화대혁명의 절정에서는 남녀의 생태적 차이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여성의 무성화(無性化) 즉, 남성화 시대를 겪었다. 1980년대 중국에서 한때 ‘여성미(女性美)’ 담론이 유행하며 여성들이 ‘여성성’을 발산했던 이유는 그간 부르주아적 반동 행위라며 억눌린 여성성에 대한 자각과 욕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서구와의 여성해방 경험의 차이로 인해, 리샤오쟝을 비롯한 일부 1세대 여성학자들은 서구 페미니즘의 수입을 계기로 ‘젠더’ 연구의 추세가 ‘여성’의 입장을 다시 가려버릴까 우려하며 ‘여성’을 고수했다. 즉, 서구 페미니즘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나 중국에서는 과거로의 후퇴였던 것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는 이원대립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 국가, 남성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온 중국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반서구적 관점은 리샤오쟝이 서양의 페미니즘과 중국이 다르다고 판단하고 중국 여성학의 본토화를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녀의 일련의 저작 <이브의 탐색(夏娃的探索)>(1987), <여인의 출로(女人的出路)>(1989), <여인으로 나아가기(走向女人)>(1992) 등은 ‘부녀해방’에 대한 이론 반성에서 시작하여 중국에 적합한 여성학, 즉 본토화의 이론적 토대를 쌓아가는 탐색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 스스로 말하게 하라 : 중국 여성 구술사 프로젝트

 

1995년 대회 이후 중국 대부분의 여성학자들이 NGO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나, 리샤오쟝과 량쥔(梁軍)이 함께 만든 ‘국제여자학원(國際女子學院)’은 대회 개최 반년 전에 문을 닫았고, 리샤오쟝은 공개적으로 대회 불참을 선언한다. 하지만 여성 연구 이론가로서의 그녀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으나, 1990년대 초부터 일흔이 넘은 현재까지, 현장에서 뛰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중국 여성 연구의 ‘본토화’를 위한 토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992년 정식으로 시작한 ’20세기 여성 구술사’ 프로젝트는 구술방법과 여성 연구를 결합한 첫 시도로 신시기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구술사 실천이었다. 그리고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03년 <여성 스스로 말하게 하라(讓女人自己說話)> 전쟁편, 시대편, 문화편, 민족편 총 4권이 시리즈로 출판되었다. 이 작업의 모든 인터뷰는 녹음되었으며, 노트와 사진을 정리하여 산시사범대학에 ‘부녀 문화박물관’을 설립했다.

 

또한, 2018년 11월에는 ‘여성/성별 연구 문헌자료관(女性/性別研究文獻資料館)’을 개관하여 여성의 지식전달을 위한 지속적인 학술연구 기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방문사(地方文史)’ 자원을 발굴하여 향후 그 성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그녀의 학술 생애를 일별해보면, 1980년대에 중국 여성학의 1세대 이론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이제는 현지답사를 통한 1차 자료 수집 및 정리에 몰두하는 운동가 또는 실천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리샤오쟝의 ‘젠더 본질주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남녀의 차이가 말살되어버린 혁명 시대를 겪은 1980년대 중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볼 때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서구와도 다르고 한국과도 다른 중국 여성학의 본토화 필요성에 힘을 실어준다. 또한, 리샤오쟝의 후기 작업인 중국 여성 구술사, 문헌 박물관 프로젝트가 본토화 실현을 위한 토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와 더불어, 우리 여성학에는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151211524413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