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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1.10.22] 논란…한국전쟁에 열올리는 중국은 왜?
[2021.10.22] 논란…한국전쟁에 열올리는 중국은 왜?
한중관계연구원2021-10-22

 중국 항미원조둘러싼 이슈

한담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

 

지난 8월 중국의 한국전쟁인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다룬 영화 <1953, 금강 대전투>(중국 원제목 금강천‧金剛川)가 한 에이전시를 통해 수입됐고 영상물등급심의 위원회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판단이 내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항미원조’는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이르는 말로,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이 전쟁은 냉전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반미’ 이데올로기와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경제 발전에 있어 미국과의 관계가 핵심적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정치, 문화적으로 한국전쟁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져왔다. 중국정부가 한국전쟁 기억으로 불거질 수 있는 대중들의 ‘반미’ 정서를 극도로 경계해 온 것이다.

 

그러던 중국이 최근 정치, 문화, 사회 전 방위적으로 한국전쟁 기억을 소환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2018년 이래 격화되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 때문인데, 중국 정부가 전쟁 기억을 통해 대중들의 반미 정서를 자극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여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중국 관방 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무역 갈등을 ‘항미원조’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관영 <CCTV> 영화 채널에서는 1960년대 ‘항미원조’ 경전 영화 <영웅아녀>(英雄兒女)를 긴급 편성하는가 하면, 그간 꺼려왔던 영화, 드라마 제작도 적극 추진되었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 형세와 맞물려 맞이한 2020년 ‘항미원조’ 참전 70주년에는 정치 문화적으로 대대적인 행사가 열리고 이를 다룬 드라마, 영화들이 쏟아졌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영화 4편, 드라마 2편, 다큐멘터리는 10편으로, ‘잊혀진 전쟁’이라 할 정도로 자취를 감췄던 지난 20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증가한 상황이다.

 

▲ <1953, 금강 대전투> 포스터

 

<1953, 금강 대전투>는 어떤 영화?

 

중국에서 2020년 개봉한 이 영화는 ‘항미원조’ 참전 70주년을 기념하여 헌정된 영화로, 1953년 7월 금강천 다리를 건너기 위해 다리를 지켜야하는 중국군과 이를 공습으로 파괴하고자 하는 미군과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중국의 여러 ‘항미원조’ 서사가 그렇듯이, 영화는 미군보다 훨씬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결국 승리하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영웅주의와 희생정신을 그리고 있다. 영어 제목이 ‘희생’이라는 점에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가온다.

 

이 영화의 수입 소식이 알려지면서 언론 매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수입 허가를 반대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우리에게 상흔을 남긴 한국전쟁을 당시 적군이었던 중국의 시각에서 그렸다는 것도 문제적이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1953년 6월에서 7월 사이 한국군과 UN군이 중국군을 상대로 벌인 ‘금성전투’로, 우리 군이 거의 1만 명이나 희생된 참혹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한 매체가 수입업자에게 왜 이 영화를 수입했냐고 묻자, “한국군이 등장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는 여러 ‘항미원조’ 영화가 그러하듯, 중국군과 미군만 등장하여 마치 ‘중미전쟁’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1953 금성대전투’라는 한국어 제목을 볼 때, 수입측이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별 고민 없이 수입 신청을 진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론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결국 수입사가 등급분류신청을 철회하면서 사실상 국내 유통은 취소됐다.

 

중국 항미원조의 국가 서술과 그 문제점

 

이번 문화적 이슈를 두고 여러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의 선택적 망각 및 왜곡과 우리의 대응을 고민할 수 있겠다.

 

영화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방탄소년단이 ‘벤틀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양국(한국과 미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한다”는 발언에 중국의 애국주의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불매운동 조짐을 보였다.

 

그들의 불만은 ‘방탄소년단이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 가는데 중국인의 감정을 마땅히 고려해야한다.’ ‘우리 지원군(중국군)의 희생은 왜 언급하지 않느냐?’ 라는 것이었다. 이에 삼성,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몇몇 기업들이 방탄소년단과 거리를 두는 조치를 취했다.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 여론에 몸을 사리는 것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만, 이제는 향후 중국의 역사 왜곡과 대중 선전으로 인한 논란에 대응하는 우리의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 네티즌의 극단적 애국주의는 중국 당국의 역사 왜곡과 교육에도 큰 책임이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대신, 그저 ‘한반도 내전이 발발했다’라고 서술된다. 전쟁 발발의 책임 소지를 언급하지 않는 까닭은 중국 참전의 정당성이 조국 수호를 위한 ‘정의의 전쟁’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 제국주의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 내전에 개입했고, 대만 해협의 군함 배치와 중국 국경 지역을 폭격하여 실제적 위협이 미쳤기 때문에 중국은 자국 보위와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애초에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서술은 교과서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대중매체에도 동일하게 반영된다.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라난 지금 중국의 10대, 20대 청년들이 방탄소년단의 발언에 발끈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패권 다툼이 장기화될 것으로 확실시된 이상, 중국 대중문화 차원에서의 ‘항미원조’ 서사는 일정 기간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국가 중심의 서사 방식, 그러니까 중국의 승리와 희생, 영웅주의만을 부각하는 영상물에 염증을 느끼고 반대 목소리를 내는 중국인들도 분명 있다.

 

다만, 그러한 목소리들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또 시진핑 집권 2기에 들어 사상단속이 더욱 강화되는 데다, 중미 갈등이 격해지는 현 상황에서 그러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의 항미원조기억 담론에 주목해야하는 이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한국전쟁 기억 담론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중국 및 중국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현재의 피할 수 없는 과제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우선, 양국이 갖고 있는 전쟁의 기억이 너무나 다르다.

 

우리에게 분단의 비극, 민족의 비극이 된 이 전쟁이 중국에서는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키는 것이 내 집과 나라를 지키는 것’, 즉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전쟁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중국의 국경 밖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당 주도의 대중운동과 문화적 재현을 통해 경험된 ‘상상 속의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인의 집단적 사유체계, 세계관 이해 측면에서는 군사, 정치적 의미의 한국전쟁 자체보다 문화적 차원에서 하나의 국가 서사로서 ‘항미원조’ 서사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또 시대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항미원조’ 서사 속 당대 중국 인민의 감정구조를 들여다보는 시도는, 과거 분명히 있었지만 오늘날 국가적 이익 관계로 인해 신속하게 은폐된, 하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 유령처럼 떠도는 냉전 시대의 왜곡된 역사, 감정, 기억을 직시하고 이분법적 냉전적 인식을 바로잡아 궁극적으로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에 다가서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

 

그간 우리 언론에서는 중미 갈등 격화나 문화적 이슈가 있을 때만 단기적으로 주목해왔는데, 향후에는 보다 긴 안목으로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 담론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211141367830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