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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3.04.21]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위기는 데칼코마니
[2023.04.21]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위기는 데칼코마니
한중관계연구원2023-04-21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한중, 한러관계 우호적 유지 위해 신중한 외교적 행보 벌여야

승자 없는 우크라이나전쟁은 1년이 넘도록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롯된 전쟁이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힘이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하면서 빗어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 가깝다. 유럽은 에너지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게 되고 러시아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정작 전쟁의 이익은 미국과 중국으로 귀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과 대만해협의 위기는 미중패권경쟁이라는 큰 프레임 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 나토의 확장 및 유로·태평양안보 개념 채택, 민주주의 연대 강화에 대한 권위주의 국가의 결집, 안보 불안으로 인한 경쟁적 군비 증강, 동북아시아에 냉전적 안보 구도 형성 등 국제질서에 큰 변화를 추동하면서 한국을 둘러싼 전략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급변했다.

 

전쟁 발발 1년을 넘기면서 앞으로 전개될 국제질서의 윤곽도 드러났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동시에 대응하며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될 듯 보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과 나토가 러시아를 견제하게 됨으로써 미국은 자국의 역량을 대중봉쇄전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의 위기는 유라시아대륙을 반으로 접어다 편 것처럼 서쪽과 동쪽 양극단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對)유라시아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의 패권국으로 다른 대륙에서 지역 패권국이 출현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전략은 대륙의 서쪽에서 러시아가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억제하고 동쪽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위해 미국은 대서양동맹을 통해 서유럽을 미국 편으로 견인하고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지원했으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국제질서에 편입을 도왔던 중국의 패권 도전에 전면적인 봉쇄전략을 펴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러의 지정학적 충돌은 우크라이나전쟁을 유발했고 미·중의 지정학적 대결은 대만해협의 위기를 동반한 전방위적인 전략 경쟁을 가져왔다.

 

▲ 지난해 5월 1일 우크라이나에 방문한 낸시 펠로시(왼쪽) 당시 하원의장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소련 시절부터 보유했던 당시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1800여 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의 대가로 미국·영국·러시아가 영토와 안보를 보장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담에서 서유럽의 반대에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지지했고 이에 반발한 러시아가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같은 시기 크림반도와 같이 러시아에 편입되고자 했던 돈바스 지역에서는 내전이 발생했다.

 

2019년 2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불가역적인 대서양 노선’을 명문화하고 그해 5월 당선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와 EU 가입을 적극 추진하여 2020년 나토로부터 ‘확대된 기회의 파트너(EOP) 지위’를 받게 된다.

 

2021년 4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가 돈바스 전쟁을 끝낼 유일한 길’이라고 밝히고 우크라이나는 이미 나토 회원국 자격을 갖추었다며 나토 가입을 촉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우크라이나에 세 차례의 대규모 무기를 지원했으며 6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다음 달인 7월에는 우크라이나는 오데사항에서 개회식을 하며 흑해에서 32개국이 참가하는 나토 시브리즈 훈련에 참가했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이 임박했다는 시그널을 계속 송출했다. 그러나 정작 나토는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우려하여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계속 유보했고,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나토 불가입 요구’를 거절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 전 미국이 참전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도 서방은 핵포기의 대가로 영토와 안보를 보장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경제 제재만 가하였고 8년 후인 2022년 러시아의 본토 침공에도 핵전쟁으로 확산을 우려해 경제 제재와 무기 지원만 하고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반대편에는 미·중이 격돌하는 대만이 있다. 대만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교두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대립의 전면에 중국의 핵심이익인 대만을 내세우며 대(對) 대만 정책에 포괄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대규모 무기 판매를 지속적으로 승인하고 군사교류를 강화하며 대만의 유엔 산하 기구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미·대만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TSMC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9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분명히 하며 미국이 기존에 취했던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선회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무력을 불사해서라도 대만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시진핑 주석은 대만의 친미 행보에 거세게 반발하며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2022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2023년 4월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경유하며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회동했을 때도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내년 1월 대만 총선 결과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대만해협의 긴장은 고조와 완화를 거듭하며 심화되는 방향으로 이행할 것이다. 중국이 패권국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대만 통일 의지를 꺾을 리도,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용인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해 8월 3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타이베이 AP=연합뉴스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어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고도화,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 중러 견제를 이유로 5년 내 현 방위비의 두 배까지 증액하며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러시아는 태평양 함대에 쿠릴 열도 남단의 실효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전투준비태세 점검을 위한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2023.04.14.) 한미일 군사 공조는 강화되고 북한의 고도화된 미사일 도발은 더욱 빈번해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은 더 심화된 단계로 진입한 듯 보인다.

 

글로 쓰여진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역사이듯이 전쟁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였어야 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국의 입장에서 3차 세계대전이 될지 모르는 재앙을 막아야 하지만 나라가 잿더미로 변하고 많은 국민이 희생된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힘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대에 위치한 중간국의 비극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유라시아 반대편에 미·중의 힘이 충동하는 위치에 한국이 있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에서 미·중의 군사적 충돌은 주한 미군의 참전, 1961년 북한과 중국 사이에 맺어진 ‘조중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른 북한의 참전, 한미일 안보 공조에 따른 한국의 연루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한국의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듯이 대만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벌어질 수 있으며 남북한이 연루되거나 한반도까지 확전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북중러 대 한미일의 냉전적 구도가 강화되고 한반도 안보의 구조적 제약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1년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정부의 나토 가입 노력이나 대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기를 수입하여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자국의 안보를 위한 행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군비 경쟁의 끝은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며 강대국의 충돌로 중간국이 희생되는 것은 자명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안보를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여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외교적 지평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국은 미·중·일·러의 균형점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인정하고 북·중·러 연대를 견제하기 위해 한중· 한러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도록 외교적 행보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지정학적 충돌의 각축장으로 큰 희생을 감내했고 지금도 남북 분단 상황으로 안보적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렵더라도 중러 양국과의 위기관리와 전쟁 예방을 위한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강대국의 부정적인 압력이 한반도에 투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