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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브리핑 (프레시안)

[2024.02.23] 아시안컵 16강 탈락한 중국, 클린스만 데려다 쓴다고?
[2024.02.23] 아시안컵 16강 탈락한 중국, 클린스만 데려다 쓴다고?
한중관계연구원2024-02-23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 축구 세계 무대 도전, 실패로 끝나지 않으려면

 

 

얼마 전 끝난 카타르 아시안컵은 개최국 카타르의 2회 연속 우승, 다크호스 요르단의 돌풍 등 다양한 화젯거리를 남겼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은 일본, 이란, 한국 등 전통적인 아시아 강팀을 피하고 1포트 국가 가운데 가장 약하다는 평을 듣던 카타르, 중동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레바논, 그리고 아시안컵에 처음 출전하는 타지키스탄과 같은 A조에 편성되어 무난한 16강 진출이 예상됐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오만, 홍콩과 평가전에서 패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중국 대표팀은 본선에서 2무 1패 무득점으로 조별 단계에서 탈락하였고, 대표팀을 맡았던 얀코비치 감독 역시 대회 직후 경질되었다.

 

중국은 2002년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2004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하면서 아시아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또한 클럽 레벨에서는 2013년과 2015년 광저우 헝다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중국 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중국 축구는 2010년대 중반에 중국이 꿈꾸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남녀대표팀과 클럽 레벨에서 모두 휘청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2010년대 중반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시안컵과 월드컵 2차 예선에서 고전 중이고, 아시아축구연맹의 AFC 클럽 랭킹에서도 동부지구 1위에서 3위로 하락했다. 지난 10년 간 중국 축구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중국 대표선수들이 조별 예선경기에서 카타르에 1대0으로 패한 뒤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프로축구의 부실화

 

한국이 1983년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한 뒤 1986년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한 국가의 대표팀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우수한 자국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자국의 프로축구 리그가 매우 중요하다.

 

중국 역시 일본 J리그의 출범에 자극받아 1994년 갑급A리그와 하부리그인 갑급B리그를 통해 정식 프로축구 대회를 시작했다. 이후 프로축구의 인기가 늘면서 창단되는 팀이 많아지자, 1부리그에 걸맞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2004년 1부리그 참가 팀 수를 16개에서 12개로 줄이며 중국 슈퍼리그(CSL)를 출범시켰다.

 

2008년에는 참가팀 수를 16개로 다시 늘리며 성공적으로 운영되던 CSL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성장을 하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부동산 건설사인 헝다 그룹의 광저우 ‘헝다’다.

 

광저우 헝다는 장린펑, 펑샤오팅 같은 중국 국가대표 선수뿐만 아니라, 김영권, 다리오 콘카, 파울리뉴 등 해외 유명 선수를 영입했는데, 경쟁구단인 상하이 선화 역시 디디에 드록바, 니콜라 아넬카, 카를로스 테베즈 등 아시아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의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광저우 헝다가 공격적인 투자로 2015년에 두 번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뒤 다른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서면서 2015~16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CSL(1억 3625만 유로)이 영국 프리미어리그(1억 1600만 유로)를 제치고 가장 많은 이적료를 쓴 리그가 되기도 하였다.

 

문제는 중국 슈퍼리그의 경우 해외 스타가 뛰는 유럽 리그처럼 중계권을 해외에 팔 정도의 인지도와 명성을 갖고 있지 못했고, 이 때문에 선수 영입에 쓴 이적료가 극적인 수입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스타 군단으로 유명한 광저우 헝다도 2017년에는 1823억 원, 2019년에는 3588억 원의 적자를 볼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이전부터 헝다 그룹을 비롯한 중국 기업, 특히 건설사들이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이들이 운영하던 축구단 역시 해체, 인수, 재창단 등의 부침을 겪어야 했다.

 

단적인 예가 장쑤 쑤닝으로, 2020년 CSL을 우승했던 장쑤는 모기업인 쑤닝 그룹이 힘들다는 이유로 바로 다음 해에 해체됐다. 여기에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까지 겹치면서, 2020년대에 들어 중국 클럽들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선수의 국제 경험 부족

 

CSL 구단 간의 선수 영입 경쟁은 내국인 선수의 몸값도 크게 올렸다. 장청둥 선수를 예로 들면, 2017년 베이징 궈안에서 허베이 화샤싱푸로 이적할 때 1억 5000만 위안(약 277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이적료뿐만 아니라 연봉 역시 가파르게 올라서, 2019년에는 중국 프로축구 선수의 연봉이 약 120만 달러로, 일본의 5배, 한국의 10배에 달했다.

 

이렇게 국제 대회 성적이나 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해외리그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는 선수가 극도로 적어졌다. 예전에는 펑샤오팅(대구, 전북), 리웨이펑(수원), 리춘유(강원) 등 K리그에서 활약하는 중국 선수들이 있었지만, 한국 1부리그에서 활약하는 중국 선수는 황보원(전북, 2011-12)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중국 대표 공격수인 우레이의 경우 CSL에서 약 29억 원의 연봉을 받다가 내국인 선수에 대한 연봉 상한을 설정하자 그제야 절반의 연봉을 받으며 스페인 에스파뇰로 이적하는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대부분이 중국에서만 활동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한 CSL이 영입한 외국인 선수와 내국인 선수의 기량 차가 커서, CSL 팀들의 전술 역시 최전방에서 뛰는 외국인 공격수에게 어떻게든 공을 전달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해외의 명장들이 CSL에서 활약하게 되었음에도 전술은 오히려 단순해졌고, 외국인 공격수에 밀려 내국인 공격수가 성장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에서 오래 활동한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켜 중국 대표팀 선수로 선발하기도 했지만, 2010년대 말부터 주요 구단이 해체되거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연봉을 주지 못하자 중국을 떠나 이전 국적을 회복하는 등 이와 같은 단기적 접근이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젊은 재능 발굴 실패

 

고액의 이적료를 들여 영입한 외국인 선수, 고액 연봉을 받고 CSL에 정착한 국가대표급 선수들에 밀리면서, 중국의 젊은 유망주는 상대적으로 이들에 밀려 출전 기회를 적게 받았다. 또 2010년대 중반 이후 이적료를 주고 구단 간 선수 영입 경쟁이 격화되고 이미 검증된 선수를 확보하여 CSL 내에서 바로 성적을 내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대부분의 구단이 오랜 투자와 관리가 필요한 젊은 선수 육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이는 이번 아시안컵 참가 팀의 평균 연령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새롭게 세대교체를 마쳤다는 평을 듣는 일본의 경우 평균 연령 26.2세로 가장 어린 팀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도 평균 연령 28.02세로 젊은 선수와 경험 있는 선수의 조화가 잘 이뤄졌다는 평을 받았다.

 

반면 중국 팀은 평균 연령이 29.17세로, 참가국 가운데 레바논(29.76), 이란(29.52)에 이어 세 번째로 평균 연령이 높은 팀이었다. 중국 측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K리그와 유사한 23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 등을 신설하기도 했지만, 고액 연봉과 이적료로 선수를 확보하여 단기간에 성적을 내기 원하는 리그 분위기와 맞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 주도의 축구 정책

 

2010년대 중반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진 중국 축구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배경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축구몽’이 있다. 집권 이전부터 시진핑 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뤄야 한다는 ‘중국몽’을 강조하였는데, 중국 축구 역시 장기적인 투자와 발전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여 다른 축구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중국인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것을 주문하였다.

 

현대 축구와 내셔널리즘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내셔널리즘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시진핑 정권이 축구에 대해서도 투자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놀라운 일도, 부정적인 일도 아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투자가 건강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중국 축구가 걸어온 지난 10년의 여정을 살펴보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정부가 시진핑 주석의 의중을 반영한 듯한 ‘중국 축구 개혁 종합방안’을 2015년 발표한 직후부터 중국의 대기업들이 무리한 선수 영입을 해온 점, 2016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중국대표팀 부임 당시 중국축구협회뿐만 아니라 광저우 헝다 역시 연봉을 공동으로 부담한 점 등을 생각할 때, 결국 CSL에 대한 중국 기업체의 투자도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열정적인 축구팬을 굉장히 많이 보유하고 있고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관심과 의지도 매우 높으므로, 중국 축구 시장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미래에 동아시아 강팀 반열에 오를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와 홍보 효과를 노린 투자에서 벗어나 중국 내 어린 재능이 충분히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국 언론은 여전히 해외 출신 명장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 중국 축구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일 한 중국 매체는 한국에서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중국 차기 감독으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중국 축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원한다면, 해외 유명 축구인의 명성에만 관심을 쏟을 게 아니라 중국 국가대표팀과 CSL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